퇴락의 미(美)

by Rudolf

모든 죽어가는 것들에 대한 소고(小考)


‘퇴락의 미’에 대해 어느 분에게 말했더니 대뜸 골동품을 이야기했다.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멈칫했다.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사실 나는 ‘모든 죽어가는 것들’에 대해 말하려 했던 것인데, 오히려 값비싼 골동품이 등장하다니…….


[퇴락]

첫째, 건물 따위가 한창 성하던 시기를 지나 쇠퇴하여 허물어짐.

둘째, 지위나 수준 따위가 뒤떨어짐.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Daum]에서 인용)


그렇다면 퇴락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문턱에서 왜 퇴락을 떠올린 것일까? 사실은 들판을 산책하던 중 마주친 겨울 덤불들, 아직 새 눈도 틔우지 못한 채 봄의 하늘에 뾰족한 가지들을 내뻗고 있는 나목(裸木)들을 보다가 문득 저들 속에서 어떤 미(美)를 찾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 내가 얼마 전 쓴 글에 소개한 시에서 ‘나목’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덕(탓)에 그 나목, 즉 퇴락에 더 눈이 더 꽂혔던 것이리라. 여기에 그 시를 다시 한번 소개한다.


길가에 떨어진 메마른 잎새들

앙상한 가지만 뾰족하게 내밀고 있는 ‘나목’

덤불이랑 자잘한 관목들 아래는

죽은 이파리들만 수북하고

초라한 덩굴들만 엉켜 있는 채

생기 잃은 게으른 표정으로

봄이 오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누나

-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1883~1963, 미국의 시인)의 ‘봄 그리고 모든 것’ 중에서



퇴락, 죽음과는 어떻게 다를까? 혹 퇴락은 과정이고, 죽음은 종착역인가? 뭐 그럴 듯도 하다. 그렇다면 퇴락은 아직 진행형인 셈이다. 그러하니 꼭 그 다음의 단계가 죽음이라고 단정 지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다른 길로 갈 수도 있을 테니.

내가 목격한 산야의 퇴락. 그것은 어쩌면 봄에 이르는 한 과정인지도 모른다.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오기 바로 직전 가장 어두울 때의 바로 그 모습. 겨울의 끝자락에서 더 나아가 봄 바로 앞전에서 마주친 퇴락. 여기에서 반 발자국 더 나가면 마른 가지마다 톡 하고 새순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면 안 된다. 안 돼. Stop. 나는 지금 퇴락에서 미(美)를 찾으려 하는 것이다. 그러하니 만물이여, 미안하지만 잠시 멈추어다오!

퇴락은 어떤 대상, 즉 물체나 상황이 전성기에 올랐다가 내리막길로 향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겠지. 시들고, 낡고, 늙고, 병들고, 추해지고, 외면당하고, 고장 나고, 버려지는 단계. 그렇다면, 아아, 우리네 인생도 그러할 테다. 다만 외면당하고 버려지지 않기만 바랄 뿐.

아차, 이 글은 추함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지. 퇴락의 미(美), 퇴락의 아름다움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퇴락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보자는 의도. 그러나 이렇게 써놓고 보니 너무 거창해졌다. 아니오, 아니 아니, 거기까지는 가지 말고, 그냥 눈앞에 보이는 퇴락의 광경에서 작으나마 미적 감각을 느껴보고자 함이로다.

주로 흐린 갈색. 손가락을 살짝 갖다대기만 해도 바스라질 것만 같은 형상. 그것에서 나는 무엇을 느끼는가? 아니, 그보다는 무엇을 보았는가?



퇴락의 미(美)


혹 퇴락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까? ‘퇴락의 미’를 찾을 수 있을까? 만일 누군가가 퇴락 속에서 색다른 면을 찾을 수 있다면 어떨까?

사실 퇴락은 그 자체만 놓고 볼 때도 정지된 현상이 아니다. 과정인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한 과정일까? 사멸? 맞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그 이상(以上, 異常, 理想)을 보자. 예를 들어 퇴락은 우리 사회나 문화, 예술 전반에 걸쳐 새로운 출발이나 소재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퇴락이 늘 부정적인 면만 지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생명이든 물체든 쇠락한 뒤 새로운 탄생이나 출발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생명에서는 한 개체의 사멸이 새 생명의 기초가 된다. 또한 사회적으로는 변혁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예술이나 문학, 음악에서는 그 어느 것보다 자주 찾는 주요한 소재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골동품 역시 ‘퇴락의 미’가 극적으로 경제적인 가치를 지니게 되는 단적인 예가 아니던가. 그리고 앞서도 언급한 대로 (생명의) 퇴락은 새로운 세대에게 시공간을 열어주는 (창조의) 과정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퇴락은 또한 새로운 문명과 문화의 시발점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무너진 과거의 영광, 문화, 과학 등을 통해서 인류는 종종 더 발전된 문명을 이룩해 내곤 했으니까. 즉 퇴락은 인간과 문화가 스스로의 길을 적극적으로 찾아나가는 문명의 페르소나(persona)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퇴락은 드디어 혹은 어쩌다 인류의 문화 정상까지 올라가고 말았는데, 이제는 어쩔 거냐……? 퇴락을 찬양하랴? 퇴락을 저 높은 단에 올려놓고 경배하랴? 퇴락을 위해 숭배의 행진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인가?



이제 여기 퇴락 스스로의 독백을 소개하면서, 아직 이르지 못한 찬란한 봄의 서막을 올려보고자 한다. 그러하니 묵직하게 내려진 무대의 끈을 힘차게 당겨주시길!


퇴락의 영광


퇴락여 퇴락이여 그대의 젊은시절

영광에 취해있던 장엄한 시절이여

이제는 스러져가는 뒤안길에 서도다


지상에 꽃피우고 천상에 꿈을심어

역사를 장식하고 문화를 부흥하여

만민들 칭송들으며 꽃길걷던 그영광


세월로 날아들고 이슬에 녹아들어

곳곳에 틈이가고 명안에 눈꼽끼어

등굽고 해는져가니 어드메가 길인가

홀연히 하늘로서 흐르는 옛그영광

저멀리 서산너머 망망한 노을되어

눈앞에 사라지려니 게섯거라 내영광


헛손을 내밀고서 헛발로 건너뛰어

두손에 움켜쥐려 두발로 내달리나

뒷산에 그늘지고 앞산너머로 지는해


어느덧 먼길달려 황혼을 앞에두고

뒤안길 돌아보니 길고긴 그림자들

눈들어 인사하려니 저혼자서 지누나


가시오 영광이여 가소서 내영광아

가던길 돌이키면 오히려 추해지니

막막한 그림자남겨 추억하게 하시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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