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파르테논 신전을 짓는다면 나는 숨결로 지을 것이다. 대리석, 필요 없다. 인부들, 필요 없다. 조각가, 필요 없다. 설계도, 필요 없다. 나는 파르테논을 물질로도 짓지 아니하고, 설계도로도 짓지 아니하고, 마음으로도 짓지 아니하고 오직 숨결로만, 단 한숨에 후 불어 지을 것이다.
그리하여 파르테논 안으로 달빛이 스며들 때 나는 또다시 외로이 떠돌며 파르테논 안을 방황하리라.
그리하여 파르테논 안으로 아침 햇살이 비쳐들 때 신들을 깨우기 위해 나는 부지런해지리라.
그리하여 파르테논 안으로 저녁놀이 잠겨들 때 나는 오래된 시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리라.
그리하여 또다시 내 영혼이 외로울 때면 나는 나는 머언 옛날로 돌아가 파르테논 언덕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들풀들 속에 서리라.
아, 그리고 미래의 파르테논을 설계하며 이리저리 생각에 잠기다가 화들짝 깨어나리라. 어느새 내 주위에 지어진 파르테논에 감격하면서.
그리하여 나는 신이 되어 파르테논 한가운데를 점령하며 내 숨결대로 지어졌는지 꼼꼼히 따져보리라.
그러나, 아아, 내 숨결은 장님이 되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오히려 돌무더기 내려앉고 허물어진 기둥 사이로 갈가마귀처럼 날아서 도망치리라.
지금의 무너진 파르테논 신전보다 나는 더 잘 지을 자신이 없기 때문에.
태양이 내려앉는 석양빛 저녁, 파르테논 신전에는 여신이 제격인가, 아니면 엄숙한 지혜자가 어울리겠는가? 그들은 또한 파르테논 기둥 사이에 서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파르테논 깊숙이 대리석 의자에 앉아 기둥 사이로 비쳐드는 햇살에 두루마리 흰 옷이 붉게 물들어야 제격인가? 혹은 지혜의 지팡이를 짚고서 머언 미래를 바라보아야 하는가?
또한 하늘에서 별들이 고개를 내밀고 달빛은 교교히 파르테논 신전 사이로 파고들 때 갈가마귀 날아들어 피 토하며 울어대면 어이할꼬?
아니다. 내가 다시 지어야겠다. 파르테논 신전. 그곳에는 별빛들도 출입금지. 달빛도 멈추시오. 갈가마귀는 더욱더 사절. 그렇다면 여사제나 지혜자는 어이할꼬?
아, 어이해야 하는가? 여사제 없는 신전을 보았는가? 지혜자가 사라진 언덕이 가능한가? 좋다. 그것까지도 받아들이자. 그러나 달빛과 별빛만은 등장해야 한다. 그리 해야 한밤중 비련의 송가가 울려퍼질 때 그 마지막 장면에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여인이 은빛 단칼을 올바로 자신의 심장에 꽂을 수 있지 않겠는가.
혹여 달도 별도 초청받지 못해서 만일, 만일에 말이다, 그때 단칼이 빗나간다면 어이할꼬? 비극이 완성되지 못하면 지하에서 그 여인의 심장을 고대하던 루키페르(Lucifer), 즉 루시퍼가 분노하지 않겠는가?
아니된다. 차라리 파르테논 신전에 여인의 심장을 감춰두자. 아무도 찾지도 못하고 찌르지도 못하게. 그리하면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그 심장을 찾기 위해 위대한 기사들이 길고 긴 모험을 벌이리라. 그리하면 또한 위대한 서사시가 파르테논 신전을 가득 채우리라. 그리하여 만대 후대의 시인들이 이 신전을 찾을 때 또한 눈물로 장시를 짓지 아니하겠는가.
내가 파르테논 신전을 짓는다면, 신전보다 먼저 시를 지으리라. 먼 훗날 무너진 파르테논 신전을 바라보며 눈물 흘릴 시를. 옛 영광, 옛 여신, 옛 신화 다 사라지고 돌무더기 위에 쓰러져 뒹구는 돌조각들 사이에서 울부짖을 시를.
그리하여 달이 뜨는 밤 파르테논 신전에서는 여신도 사라지고 지혜자도 모습을 감춘 채 오직 적막만 감돈다면, 아아 죽음 같은 고요만 달빛에 떠돈다면 그때는 어이할꼬?
파르테논 신전이여, 차라리 보름달 비치는 한밤중에는 한없이 울어다오. 석조기둥 무너져 내린 틈바구니에 앉아서 저 창조 이전부터 전설처럼 내려오는 처절한 애가를 불러다오. 그리하여야 파르테논 옆을 지나가는 이가 고개를 돌리고 함께 눈물을 흘리지 않겠는가.
특히 보름달 뜬 밤의 파르테논은 명심하거라. 액자의 사진으로 담겨 있는 그 광경. 은화 한 닢도 안 되는 가격에 마구 팔려나가는 너의 형상. 차라리 울거라, 파르테논이여. 아니면 웃든가. 미치든가. 그도 아니면, 그래 잠잠하거라. 액자 속에서 고이고이 잠들어 영원 영원 영원 후에 깨어나 지나가던 이들이 던져준 동전이나 세고 앉았거라, 고대의 영광이여, 문명의 영광이여, 문화의 영광이여, 인류의 영광이여.
그리하여 나는 이번에는 파르테논 신전을 숨결로도 아니 짓고, 사진으로도 아니 지으며, 차라리 달력 속 명화에 담아 그 아래에 쓰인 숫자들을 보면서 내 기일이 며칠 남았나 세어 보리라. 손가락 꼽아 가면서. 만일, 만일에 손가락 발가락으로도 다 세지 못하면 이빨까지 셀 것이요, 그것으로도 모자라면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세면서 너 파르테논 신전을 위해 시를 지으리라. 사행시를.
파 리한 달빛 아래 비틀려 가는 님은 가
르 마 길게 타고서 두꺼운 돋보기 안경
테 너머로 잔잔히 비치는 달빛을 받아 저
논 밭 사이로 휘파람 불며불며 나아가리라, 너 파르테논을 위하여!
(달력의 파르테논 신전을 바라보면서 잡글을 쓰다.)
참고 | 파르테논(Parthenon)은 BC 438년 그리스의 아테네에 지어진 신전으로, 제우스의 외동딸 아테나(Athene)를 모시는 곳. 한때는 ‘미네르바 신전’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아테나는 지혜, 예술, 전쟁의 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