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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dolf May 12. 2023

건달백서

악당영화를 무용담처럼 제작하는 세태가 답답해서리. . .

건달은 무슨 뜻? Gundal = gun(銃) + dal(달[月]) = 보름달 밤에 총 든 사나이? 하지만 국어사전에 의하면 건달의 뜻은 다음과 같다. [‘Gundal’이라고 영어로 써놓으니 무슨 SF 영화에 나오는 지혜자 노인이나 아니면 괴수(怪獸, monster) 같은 느낌도 든다.]     


건달(乾達) | 특별히 하는 일 없이 행패와 난봉을 부리고 돌아다니는 사람 [인터넷 포털 사이트 ‘Daum’에서 인용]     


즉 건달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빈둥거리거나 게으름을 부리며 여러 사람 힘들게 하는 불량배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가진 것 없이 빈둥거리다가 남들 등치는 짓도 포함된다. 즉 선량한 사람들 괴롭히고 금품을 빼앗는 못된 양아치, 또는 그보다 좀 심한 깡패 같은 느낌도 드는 것이다. 백수건달이라는 표현을 참조하는 것도 좋다. 백수(白手). 하얀 손? 아니다. 손에 든 것 없는 빈털터리. 여기에 건달까지 포함되면 그냥 동네 못된 양아치가 된다.

    건달의 어원은 건들바람에서 나왔다고 하는 말도 있다. 건들바람은 바다에서 흰 파도를 일으키고 작은 나뭇가지들이 흔들릴 정도의 바람을 말한다고 하는데, 이는 초속 5.5~8m의 바람이라고 한다. 사실 1초에 최대 8m까지 달려간다고 하면 여간 빠른 것이 아니다. 초가을에 부는 시원하면서도 쌩하고 부는 바람을 연상하면 되겠다. 즉 건달은 아주 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냥 놔두기엔 괘씸한 고런 정도의 양아치 같은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가을 추수철에 저 혼자 동네 돌아다니며 못된 짓 하는 그런 인간들. 한 대 줘박자니 주먹이 아깝고, 냅두자니 눈꼴신 놈팡이들.

    한편, 건달은 불교에서 음악을 관장하는 정령인 간다르바, 한자로 ‘건달파(乾闥婆)’에서 나왔다고도 하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은 너무 고상해서 오늘날의 건달과는 영 안 어울린다. 그보다는 차라리 ‘건들거리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듯이 그저 건덩건덩 왔다갔다하다가 여기저기에 기웃거리며 삥도 뜯고 하면서 수틀리면 주먹도 쓰고 뒤에서 사기도 치고 하며 (그렇다고 관아에서 붙잡아 가기에도 좀 성가신) 동네를 불편하게 하는 종자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에나 언제나 있으며 누구에게나 환영받지 못하고 성가시기만 한 그런 인간들 말이다.

    그런데 혹 환영받는 건달도 있을까? 예를 들면 로빈 후드나 홍길동 같은 인물 말이다. 하지만 이들은 의적(義賊)이라고도 하니 여기에서는 그냥 제외하기로 한다. 반대 없으시죠?     



건달의 어원     


이야기가 좀 빗나가는 바람에 건달의 어원에 대해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 조선시대 초기에 사복시(司僕寺)라는 관청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임금이 타는 수레나 말, 마구간 및 목장 등을 관리했다. 이때 말을 맡아 관리하는 하인이 거들먹거리며 다닌다고 해서 ‘거덜’이라고 했다는데, 바로 여기에서 건달이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이다.

    건달을 영어로 번역하면 무엇이 될까? Rascal(불량배), scoundrel(무뢰한, 악당), trickster(속임수 부리는 종자, 마술사) 등이 될 듯하다. 이들은 모두 교활하면서도 장난스러운 행동을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gundal(건달)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어도 어딘지 어울릴 듯하지 않은가.

    사실 건달은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양념 같은 요소도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선한’ 건달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 아니 그보다는 좀 고독하고 외로운 건달은 어떨지. 이들은 어떤 면에서는 삶의 양념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 밋밋한 일상에서 어딘지 색다른 느낌이 드는 요소처럼. 물론 이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들을 해치거나 괴롭힌다면 당연히 사회악이 되겠지만, 그 반대로 사회에 저항하는 인물로 등장한다면 좀 다르지 않을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홍길동이나 로빈 후드 같은 반항아 말이다.


     

건달남, 의리남, 고독남     


건달이긴 하지만 의리남일 경우에는 좀 용서(?)가 되기도 할까? 순진 건달이나 어벙 건달, 뺀질 건달, 악동 건달 수준이라면 그런대로 봐줄 만할 수도 있겠다. 여기에 외모가 수려하고 씀씀이도 좀 있다면 그런 모습에 뿅 가는 계층도 있을 터이고. 이들이 어깨 힘주고, 턱 들어올리고, 건들건들 골목길 쑤시고 다니며 주머닛돈 인심 팍팍 쓰면 꼬마 조무래기들뿐만 아니라 콧구멍에 바람 들어간 아낙들이 힐끗힐끗 눈길 주지 않겠는가 말이다. 게다가 요즘 말로 유머 감각 좀 있고 집안 괜찮으면 오히려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할 터이고. 여기에 장난기까지 발동해서 주변 사람들 눈길을 끌면 그야말로 동네방네 골목대장 우쭐대장을 넘어 우상이 되기까지 한다. 게다가 때로는 의리남 같은 행동도 보이면 그냥 온 동네의 최고봉이 되는 것이다.

    소설이나 영화 등에는 이러한 건달들이 종종 등장한다. 게다가 주인공으로까지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끌려 사람들이 모여들면 일종의 팬덤 현상까지 나타난다. 팬덤. Fandom. 영화배우나 가수, 운동선수 등에게 몰려들어 환호하는 사람들 말이다.

    이러한 장면을 보면 필자 같은 조무래기들은 좀 쫄리기도 하고 샘이 나면서도 어딘지 약 오르는 것이 사실이다. (겉보기에만은) 늘 모범(?)적으로 살아가는 듯이 여겨지지만 속으로는 약간 (또는 마니마니) 열등의식도 있고 건달 영웅들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도저히 그런 계층에는 속할 수 없어서 미리미리 체념해 주는 우리네 장삼이사들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멋쟁이(?) 건달님들에게 우르르 몰려드는 인파를 보면 인생무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딘지 서글퍼지기도 한다. 정말이라니까.

    에잇, 못난 인생 탓 그만하고 현실로 돌아오자.

    서양에서는 ‘outlaw’나 ‘rogue’ 같은 단어가 건달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이 외에 범법자, 무법자, 교활한 인간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 중에서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서도 장난기 있고 남들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여기에 더해서 이들이 겉보기와는 달리 의리남이면서 매력남이라면 어떻게 될까?

    영웅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등. 그런데 이런 영웅들의 일상은 대개 평범한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다. 또는 아주아주 고독한 인물로 등장하기도 하고. 하지만 이러한 캐릭터들은 실은 모든 남자들의 로망, 즉 우상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 않은 분들은 빼고.      



건달을 넘어 무법자로     


미국 영화에서 종종 다뤄지는 ‘Billy the Kid’나 ‘Jesse James’와 같은 인물은 건달을 넘어서 무법자가 된다. 무법자, 즉 ‘outlaw’. 글자 그대로 선량한 사회법을 어기고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난폭자들. 살인, 폭력, 강도, 납치 등등으로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무뢰한들.

    ‘Billy the Kid’는 미국 서부 역사상 가장 유명한 무법자로 손꼽히기도 한다. 본명은 윌리엄 보니(William Bonney, 1859~81). 그는 어릴 때 가족과 함께 미국 서부로 이주했는데 1870년대 후반인 15살 때부터 못된 짓만 골라서 하기 시작했다. 즉 무법자가 된 것이다. 그는 총을 잘 쏠 뿐만 아니라 칼이나 말타기 등에도 능해서 그 일대에서는 당해 낼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1881년 4월에 21세의 나이로 총에 맞아 사망하고 말았다.

    이러한 빌리 또는 보니는 최소 27명을 죽였다고 한다. 그는 뉴욕에서 살다가 어릴 때 캔자스 주로 이사했으며, 그곳에서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와 함께 콜로라도주를 거쳐 뉴멕시코주로 이사한 뒤 10대 초반에서부터 갱단에 속해서 미국 남서부와 멕시코 북부를 넘나들며 온갖 범죄를 다 저질렀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인물이 유명한 영화의 주인공으로 재탄생되어 청소년들의 우상이 되기까지 하는 것이다.

    미국 서부의 악명 높았던 악당 중 또 한 사람은 제시 제임스(Jesse James, 1847~82)라고 할 수 있다. 제시는 무법자의 대명사로도 알려져 있는데 철도역사(鐵道驛舍), 철도회사, 은행 등을 닥치는 대로 털었고, 미국 남북전쟁에도 참여했으나 나중에 범죄를 저지르고 도피하던 중 자신의 동료에게 총에 맞아 사망했다.  

    사실 이들은 무법자이며 살인자다. 그러나 이들이 애초부터 살인자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소소한 건달로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기 시작하며, 좀더 지나서는 범법자가 되었다가 결국 나중에는 살인자까지 가게 된 것이다. 이쯤 되면 건달은 사회악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일 뿐이겠지만, 오늘날 수많은 악당영화가 마치 영웅담처럼 극장은 물론 TV나 기타 영상매체에서 널리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이는 많은 사람이 그런 스토리에 환호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악당들에게 고통받은, 또는 고통받고 있는, 그리고 장래에 고통받게 될 수많은 이들은 외면한 채.



악당영화를 영웅담처럼 제작하는 인간들……. 그리고 그에 열광하는 소비자들……. 나는 이러한 사실이 무척 불편하다. (그들이 만일 자기 자신을 비롯한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이 그러한 무법악당들에게 고통을 받는다면, 그런 상황에서도 과연 악당영화를 손들고 환영할 수 있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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