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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dolf May 30. 2024

마술사와 오케스트라 (4)

재1장 | 가을정원 (4)

주원은 편지수와 마주앉았다. 가관이었다. 편지수의 모습이. 사실 주원은 신경 쓰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이것저것 다듬고 나온 것이다. 너무 티 나지는 않게. 그러한 자신이 우습게 여겨지긴 했지만 머리 얼굴 옷매무새 등을 다듬는 손길은 멈춰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편지수의 몰골은 어떠냐 하면……. 이것은 남들이 꼭 알아야 한다. 아무리 일에 바쁜 사람이라도 그렇지, 나 주원은 미국에서 오랫동안 공부하고 와서 (그쪽도 두 눈 똑바로 뜨고 봤다시피) 며칠 전 어마어마한 귀국연주회를 연 사람이란 말이야. 귀, 국, 연, 주, 회. 게다가 우리 부모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에구, 말을 말자.

    아무튼 그 복장 복색 꼬라지는 설명 불가. 게다가 흐트러진 장발.

    그런데 그보다 더 한심한 것은 앉자마자 한 말이었다.

    “죄송합니다, 이미자 씨.”

    “이미자 아니거든요!”

    “아차차, 죄송, 죄송, 죄송. 정말 죄송합니다.”

    이 남자 죄송 소리가 버릇인 모양이다. 늘 죄송 죄송 죄송…….

    그러나 어떻든 주원의 눈에서 핏발이 섰다. 지금 집에서는 어머니 남궁 여사께서 닷새째 두문불출하고 드러누운 상태다. 바로 그 이미자 때문에! 주원 자신은 친구는 물론 아무에게도 연락도 하지 못하고 있고.

    그런 판에 눈치도 없이 이미자라니!

    주원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성큼성큼 걸어서 계단 쪽으로 향했다.

    남자가 당황해 하며 뒤쫓아온다.

    “아, 잠깐만요. 저기…….”

    웃기는 인간. 내가 미쳤지.

    계단을 다 내려가니 편가가 바로 옆에 와서 팔을 붙잡으려 한다. 주원이 눈 치켜뜨고 돌아다보았다. 편가가 멈칫하며 손을 거둔다.



주원은 문을 밀어 열고서 큰길로 나갔다. 종각역 쪽으로 갔다. 그때까지도 편가는 계속 따라붙으며 뭐라고 변명을 해댄다.

    종각역 지하도로 내려갔다. 상가 쪽으로 걸어갔다.

    편가가 이제는 아예 주원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같았다.

    주원은 편가 옆으로 몸을 비틀며 지나가려고 했다.

    편가가 계속 막아선다. 팔을 붙들려는 것 같았다.

    주원이 그 팔을 뿌리치려고 왼팔을 들어올렸다. 아니, 들어올리려 했는데 그것이 동작이 좀 컸던 모양이다. 편가의 몸을 탁 친 것이다. 편가가 어어어 하면서 옆으로 쓰러지려 한다. 그러면서 주원의 소매를 붙잡았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런 동작에서 편가는 균형을 잃으며 여성내의가게의 마네킹 쪽으로 쓰러졌다. 주원의 옷을 붙잡은 채. 게다가 편가는 쓰러지면서 한쪽 다리를 번쩍 들어올리는 바람에 첫 번째 마네킹 오른쪽 옆에 있는 또 다른 마네킹도 치고 말았다.

    또한 주원은 편가와 함께 쓰러지며 팔을 벌리는 바람에 첫 번째 마네킹 왼쪽에 있는 유리 진열장을 손으로 치고 말았다.

    여기에다 더 끔찍한 것은 두 번째 마네킹이 쓰러지며 마침 그 옆에 나와 있던 가게 여직원을 덮친 일이다.

    우당탕 퉁탕. 쨍그랑. 와르르르…….

    내의가게는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비명과 함께.

    뭇 행인들의 시선집중.     

 


두 사람, 주원과 편가는 상가관리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내의가게 여자는 병원에 가서 치료받아야 한다며 허리에 손을 대고 문지르고 있었다.

    또한 가게 여자는 경찰서에도 가야겠다고 고집부렸다. 마네킹 두 개 파손, 유리 진열장 파손, 옷 몇 벌 파손, 옷걸이 파손, 영업손실, 치료비 등등. 피해가 막심하다는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은 상당한 금액을 주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편가는 은행카드나 신용카드로 빼낼 수 있는 돈이 거의 없다고 했다. 예금잔고, 현금서비스 등이 모두 한도 가까이까지 바닥나 있었고, 현금은 물론 얼마 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편가는 주원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주원은 어이가 없었다. 따지고 보면 자신도 피해자다. 그러나 가게 여자는 둘이 사랑싸움을 하다 함께 넘어진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주원은 달라는 대로 다 물어주고 말았다. 근처 은행에 가서 현금을 빼온 것이다. 합의서 한 장을 받고서. 게다가 나중에 가게 여자가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그것도 보상해 주기로 했다.

    “죄송합니다.”

    가게 여자에게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 나서 두 사람은 관리사무실을 나왔다.



한동안 말도 없이 걸었다. 주원은 앞에서 걷고, 편가는 뒤에서 따라오며.

    지하도를 나와 걷고 걷다 보니 종로3가에 이르렀다.

    주원이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편가도 멈춰서서 무뚝뚝한 표정으로 마주본다.

    뭐야, 미안한 마음도 없는 거야?

    주원은 어이가 없어서 그냥 돌아섰다.

    편가가 갑자기 주원 앞으로 뛰어와서 선다.

    “제가 다 갚아드리겠습니다.”

    됐네요, 이 사람아. 그쪽 갈 길이나 가셔.

    “비키세요. 갈 데가 있으니까.”

    “제 사무실에 가시죠. 거기 가면 다 해결해 드릴 수 있습니다.”

    주원은 편가를 비켜서 걸어가려 했다.

    “저, 실은 그날 그 파티 하던 날 밤에 제가 사진을 찍었거든요. 그쪽 사진. 그거 오늘 아침에 크게 확대해서 뽑아놓았습니다. 가서 보실래요?”

    편가는 두 팔을 최대한 벌려 커다란 네모를 그렸다.

    어이없음.  

    주원은 정말로 어이가 없어서 멍한 눈으로 편가를 쳐다보았다.

    “제가 핸드폰에 저장해 놓았는데 한번 보시죠.”

    편가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사진을 찾아서 앞으로 내민다.

    주원은 얼떨결에 핸드폰을 받아서 그 사진을 보았다.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주원 자신의 모습. 눈을 반쯤 지그시 감고서. 머리 꼭대기에서 발끝까지 다 나와 있었다.



주원은 고개를 들어서 편가를 노려보았다.

    이 사람 뭐야?

    스토커?

    “저 사진작가입니다.”

    바디아트라며?

    “제 직업이 여러 가지 거든요. 허락받지 않고 찍어서 죄송합니다만, 그때 그 모습이 너무 아름…….”

    아이고.

    주원은 돌아서서 종로2가 쪽으로 걸었다.

    이거 사생활 침해 아닌가? 그 뭐라더라……? 초…… 초상권…… 침해?

    고발해도 되는 거겠지……?

    주원은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편가가 바로 뒤까지 따라와 있다가 깜짝 놀라 움찔한다.

    “사무실이 어디예요? 수송동?”

    편가가 주원의 사진을 확대해 놓았다고 하니 그것은 일단 돌려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진 원본도.

    “아, 거기는 임시사무실이고, 제 진짜 사무실은 홍은동에 있습니다. 전철 타면 금방 가는데…….”

    “택시 타고 가죠.”

    주원이 핸드폰으로 택시 앱을 열려고 하자 편가가 얼른 자기 핸드폰을 꺼낸다.

    “제가 부를게요.”      



[다음 이야기]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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