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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 Nov 05. 2024

#1. Perfect한 시작은 없다

새벽의 완벽주의자


"이 부분만 수정하면 될 것 같아요."


강서준은 모니터 화면을 뚫어져라 보며 중얼거렸다. 새벽 3시. 사무실의 형광등 아래 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빛났다. 어제도, 그제도 같은 시간이었다. 완벽한 제품을 만들기 위한 그의 고집스러운 여정은 계속되고 있었다.


책상 한켠에는 식은 컵라면 용기가 쌓여있었다. 벽에 붙은 화이트보드에는 빼곡한 수정사항들이 적혀있었다. 'UI/UX 최적화', 'AI 엔진 성능 개선', '데이터 정확도 99.8% 달성'... 그가 추구하는 완벽함의 기준들이었다.


"서준아, 이제 그만하고 들어가."


이하진이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 경험을 쌓고 돌아온 그녀는 서준의 대학 선배이자 'Perfect'의 공동창업자였다. 


"누나,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UI 플로우만 조금 더 다듬으면..."


"지난주에도 그게 마지막이었잖아."


하진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두 달째 반복되는 상황이었다. MVP 출시까지 한 달을 잡았던 계획은 이미 두 배의 시간을 넘어섰다.


위기의 징후


하진은 커피머신 앞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옆자리의 김유진이 눈치를 살폈다.


"CTO님... 전 퇴사 신청서를 써야 할까요?"


"유진아..."


"EduAI는 벌써 두 번째 업데이트래요. 저희는 아직도 베타 버전도 못 냈는데..."


하진은 유진의 어깨를 토닥였다. 처음 합류할 때만 해도 유진의 눈빛은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서울대 수석 출신의 강서준, 실리콘밸리 경험의 이하진... 완벽한 듯 보였던 창업팀이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줘."


"근데 기다리면 뭐가 달라질까요? 대표님의 완벽주의는 점점 더..."


그때 회의실에서 서준이 나왔다. 피곤한 얼굴이었지만, 여전히 그의 눈빛은 단단했다.




예견된 이별


다음날 아침, 예정된 미팅 시간보다 30분 일찍 사무실에 도착한 서준은 책상 위에 놓인 하얀 봉투를 발견했다. 김유진의 사직서였다.


"서준아."


하진이 조용히 다가왔다.


"알고 있었어?"


"...네. 어제 유진씨가 저한테 먼저 얘기했어요."


서준은 봉투를 열었다. 깔끔한 글씨체로 쓰인 사직서와 함께, 작은 편지가 들어있었다.


[대표님께,

Perfect는 제가 꿈꾸던 모든 것이었습니다. 뛰어난 기술력, 혁신적인 비전... 하지만 완벽을 향한 집착이 우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고 있어요. 

대표님의 꼼꼼함과 열정은 분명 장점입니다. 하지만 그 장점이 때로는 족쇄가 될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아셨으면 좋겠어요.

완벽한 제품을 만들기 전에, 완벽한 팀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 김유진 드림]


"박민우 대표님 오늘 오신대."


하진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투자 검토는 물론이고... 멘토링도 해주시겠다고."


서준은 대답이 없었다. 창가에 서서 멀리 보이는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완벽하게 맑은 하늘. 그 완벽함이 오늘따라 그를 괴롭게 했다.


"서준아..."


"누나가 맞았어요."


서준이 갑자기 말했다.


"처음부터 누나 말대로 빨리 출시했어야 했는데..."


하진은 다가가 동생의 어깨를 잡았다.


"늦지 않았어. 우리가 필요한 건..."


그때 사무실 문이 열렸다. 중년의 사내가 서 있었다. 박민우였다.


"실패해본 적 있나요, 강서준 대표님?"


서준이 고개를 들었다. 박민우의 눈빛은 따뜻했지만, 그 속에 담긴 날카로움을 놓치지 않았다.


"아뇨... 지금까지는요."


"그럼 이제부터 배워볼까요? 완벽한 실패부터 시작해서..."


박민우가 씩 웃었다. 그의 미소 속에는 수많은 실패와 성공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하진은 그들을 바라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어쩌면 오늘의 이 불완전한 실패가, 그들의 완벽한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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