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당신의 완벽이오?"
박민우는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며 묻고는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 사무실 한켠의 작은 회의실. 서준은 그의 앞에서 긴장한 듯 허리를 곧게 폈다.
"아... 아직 몇 가지 보완할 부분이 있습니다만..."
"보완이요?"
박민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30년 가까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살아온 그의 눈에, 젊은 창업자의 조급함이 보였다.
"내가 창업했을 때 이야기를 해줄까요?"
박민우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먼 산을 보는 듯한 눈빛을 했다.
"95년이었나... 첫 사업을 시작했을 때, 나도 당신처럼 완벽을 추구했어요. IMF 직전이었는데도 말이죠."
서준이 귀를 기울였다.
"6개월 동안 준비했죠. 모든 게 완벽했어요. 사업계획서, 시장분석, 심지어 향후 10년 계획까지... 하지만 막상 시작하고 보니, 그 완벽한 계획 중 단 한 가지도 예상대로 되지 않더군요."
박민우의 눈빛이 서준을 향했다.
"알아요? 그때 날 살린 건 바로 그 실패였어요. 완벽하게 실패하고 나니,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진짜 시장이, 진짜 고객이."
오후의 투자사 회의실. 서준은 마지막 슬라이드를 넘기며 발표를 마쳤다.
"이렇게 AI 엔진의 정확도를 99.8%까지 높일 수 있습니다. 기존 경쟁사들의 평균이 95%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출시 일정은요?"
날카로운 질문이 날아왔다. 줄곧 팔짱을 끼고 있던 투자사 대표가 입을 열었다.
하진이 서준의 팔을 살짝 건드렸다. 아침에 박민우와 나눈 대화를 떠올리라는 신호였다.
"현재로서는... 두 달 안에 베타 버전 출시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서준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평소의 그답지 않은 불확실한 답변이었다.
"두 달요? 지난번엔 한 달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투자사 대표의 날이 선 시선이 이하진에게로 향했다.
"CTO님, 솔직히 말씀해주세요. 이 일정 맞출 수 있습니까?"
하진은 잠시 침묵했다. 서준을 향한 시선이 무거웠다.
"노력하겠습니다."
대신 서준이 입을 열었다.
"노력이 아니라 확신이 필요합니다, 강대표님. 시리즈 A 투자는 어렵겠네요."
회의실을 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6군데 투자사를 돌았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기술력은 좋지만...' 이라는 말이 귀에서 맴돌았다.
"여기서 잠깐 쉬었다 가지."
하진이 근처 카페를 가리켰다. 박민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됐나요?"
박민우가 물었지만, 두 사람의 표정만 봐도 답은 알 수 있었다.
"완벽한 거절이었습니다."
서준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 좀 알 것 같아요. 박대표님이 말씀하신 완벽한 실패가 뭔지..."
박민우는 잠시 서준을 바라보았다. 아침과는 다른 눈빛이었다. 처음으로 작은 균열이 생긴, 완벽주의라는 단단한 갑옷에.
"그럼 이제, 진짜 제안을 해도 될까요?"
박민우가 노트북을 열었다.
"무슨... 제안이신가요?"
"당신의 완벽한 실패를 투자해주고 싶습니다."
하진이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2주 안에 출시하세요. 지금 가진 기능의 절반만 가지고."
"2주요? 그건 말도 안..."
"실패하면 제가 책임지죠. 시드 투자는 제가 하겠습니다."
서준은 말을 잃었다. 하진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서준아... 어쩌면 이게 우리의 완벽한 기회일 수도 있어."
카페의 부드러운 재즈 선율이 흘렀다. 창밖으로 지는 해가 보였다. 서준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의 완벽주의는 지금껏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그 확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박대표님."
서준이 입을 열었다.
"만약... 만약 제가 실패한다면, 그때는..."
"그때는 내가 당신의 두 번째 실패를 위해 또 투자하죠."
박민우가 환하게 웃었다. 그의 미소 속에는 수많은 실패와 성공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마지막 햇살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서준의 완벽주의도 그렇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