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질책

by 이영진

뜨거운 질책


영진

“요즘 보내주는 글 잘 읽고 있어요. 이 작가 화이팅!”

친구 성규선이 문자를 보내왔다.

1984년 장교로 같이 임관하여 규선이는 사단에서, 나는 보병 소대장으로 해안 경비를 했다. 사단 간부 교육 때마다 멀리서 온 동기들을 챙겨주는 규선이는 키도 크고, 잘생겨서 헌병으로는 정말 잘 어울리는 친구였다. 나는 2년 4개월 군 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제대했고, 규선이는 장기 복무를 택해 군인의 길을 걸었다.

서로 추구하는 길이 달라 소식을 모르고 살다가, 1989년 가을 국립극장에서 규선이를 다시 만났다. 라이방 선글라스에 말 장화, 멋진 오토바이를 타고, 부하 열댓 명을 데리고 남산 국립극장에 나타났다. 조용하던 극장에 헌병 여러 명이 오토바이 소리 요란하게 나타났으니 난리가 났다.

아는 직원이 헐레벌떡 뛰어와 지금 소극장 앞에 헌병들이 잔뜩 와서 나를 찾는다 하니, 제대한 지가 오래 됐는데 무슨 일로 군대에서 나를 찾나 어리둥절했다.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혹시나 내가 맡았던 해안 경계 지역에서 나도 모르게 간첩 침투가 있었고, 그 건으로 나를 잡으러 왔나 하는 불길한 생각을 하며 소극장을 나왔다. 긴 계단 밑에는 정말 헌병들이 많았다. 그때 나는 국립 오페라단 ‘휘가로의 결혼’ 조연출로 무대 작업 중이었다. 경황이 없어, 망치며 닛빠, 뻰치, 드라이버 등 작업공구를 주렁주렁 허리 벨트에 달고, 먼지를 뒤집어 쓴 채 계단 위에 서 있었다. 그 중 제일 화려한 복장의 장교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 어이 이영진이

하며 나를 불렀다. 처음에는 정신이 없어서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 자세히 보니 어디서 많이 보던 얼굴이었다. 성규선.

어깨에는 대위 계급장이 빛나고 있었다. 규선이는 내 모습이 기가 막혔던지 아래 위 찬찬히 훑어보더니

- 니 지금 뭐하노?

- 어? 일 해. 무슨 일인데?

- 뭔 일 하는 데 이 모양이고?

- 무슨 일이냐고?

- 무슨 일은 짜슥아. 니가 보고 시퍼 왔지

- 그거 때문에 온 거여?

- 그거 보다 더 소중한 일이 뭐 있겠노?

- 야. 빨리 가. 나 바뻐.

- 왜? 아… 오랜만에 만나 이거 와 이라노.

- 아 나 바빠 죽겠다고 임마. 빨리 가라.

자꾸 가라고 밀어내는 나를 보며, 긴 한숨을 쉬더니, 다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하들을 이끌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남산에 있는 수도경비사령부에 근무 중, 내가 국립극장에서 아르바이트 한다는 소리를 듣고 보고 싶은 마음에 한달음에 찾아 온 것이었다.

내가 헌병들에게 잡혀가는 줄 알고, 하던 일 멈추고 숨죽이며 지켜보던 국립극장 직원들에 의해 이 희한한 만남이 알려졌다. 그 덕분에 내가 장교 출신이라는 사실과 무역학과를 졸업했는데, 전공과 다른 연극판에 뛰어들었고, 집안 반대로 경제적인 지원이 없어 이렇게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간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 뒤로 나에 대한 대접도 많이 달라졌다. 그 당시 국립극장장에게도 이 일이 보고가 되었고, 국립무용단 단장이셨던 조흥동 선생님은 나를 직접 찾아 오셨다. 자신도 남자가 무용한다고 집안 망신이라고 집에서 쫓겨나 어려운 세월을 사셨지만 그 당시 어려움이 더욱 이 바닥에 살아남아야 하는 의지가 되셨노라고 비싼 식당에서 맛있는 밥 사주시며 위로해 주셨다. 그 뒤로 조 선생님은 나를 보실 때마다 "어이, 미친놈. 밥은 먹고 다니냐?"하며, 머리를 쓰다듬으며 예뻐해 주셨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그 때의 창피함, 나만 뒤처지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 선생님들의 격려 등 여러 복잡한 요인들이 이 낯선 세상에서 살아남게 된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

해서 내 소중한 친구 규선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규선아. 글은 그냥 나오는 게 아녀.

눈물 반, 후회 반, 조바심으로 가슴 태우던 그런 인생을 살아야 숙성돼서 나오는 겨. 그 때 너가 나에게 “야. 이 미친놈아. 너 지금 뭐하노?”하며, 눈물 그렁그렁했던 그 눈빛, 그 뜨거운 질책이 내게는 ‘살아남아라. 임마야.’하는 큰 격려로 들렸어. 지금도 늘 고맙게 생각한다. 친구야.

이 낯선 세상에 뛰어들어 좌충우돌 하였다. 나의 모습을 보며 부모 형제의 이해가 부족했던 반면, 여러 자상하신 선생님과 선, 후배, 친구들의 격려가 많은 힘이 되었던 게 사실이었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이겨내라고 술 사주던 친구들, 회사로 오라 해서 연극표 여러 장 사주고, "밥 먹었냐?"며 꼭꼭 점심 챙겨주던 친구들. 자존심에 밥 먹고 왔다고 큰소리는 쳤지만, 며칠 째 라면으로 때우던 때였다. 힘든 삶에 하늘에 대고 욕도 하고, 저주도 퍼부어 보았다. 하지만, 남이 강요한 게 아니라 내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 어디 가서 하소연 할 수도 없었다. 그 때마다 늘 뒤에서 지켜주던 든든한 내 친구들. 고맙고 고마운 인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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