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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라 Jun 29. 2022

919 라지오, 정글짐 202호

여덟 살 떄 즈음 그리고 이곳에 이사를 오기 전, 나는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곧장 달려가곤 했다. 막상 집에 도착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지만 무언가 조용히 가라앉힐 게 필요했던 것 같은데, 지금 보면 커튼 사이로 불 꺼진 방 안을 온기로 채워주는 햇볕이 필요했던 것 같다.


여덟 살은 아버지보다는 엄마를 목놓아 부르는 나이. 나는 하릴없이 엄마를 대신해 라디오를 킨다. 정오가 되면 흘러나온던, 지금은 개그맨이 아니냐고 우스겟소리를 듣는 그 가수가 방을 채운다. 조용히 그 소리를 듣는다. 고속도로로망스 라든지 지금은 뭘하고 사는지 전해들을 수도 없는 아이돌의 노래 등등. 내 외로움을 생각나면 떠오르는 것은 햇볕과 라지오.


괜스럽게 커텐의 입을 조금 벌려 흘러나오는 햇빛을 맞고 있으면, 몸이 따뜻하게 감싸는 기분이 좋아 나는 그림자 중 가장 따뜻한 곳에 자리해 누워서 아무말도 없이 바닥의 패턴을 세어보다 잠이 든다. 


아픈 것이 아니라 당연했던 것. 형과 나는 엄마가 올 떄까지 추적추적 계란 후라이를 굽는다. 절반이 탄다. 소금을 너무 많이 뿌려 계란후라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요리 비슷한 것이 된다. 그것을 뭐가 그렇게 재밌다고 했던지. 조그마한 아홉살의 형의 등이 얼마나 넓다랐던지. 안타까운 마음보다는 애틋한 마음이 든다. 


좁디 좁은 신림의 빌라는 우리에게 정글짐. 아랫층 할머니는 우리를 싫어하셨을 게 당연했다. 그걸 모르고 뛰어다녔으니 그 할머니는 우리를, 그리고 엄마를 미워했을 것이다. 항상 화가 난 표정을 보고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들은 그 날 저녁도 엄마를 기다리며, 그리고 티브이를 멍하니 보며 서로 외로움을 달랜다.


9시 즈음이 되면 엄마는 누나를 데리고 집에 도착한다. 분명 엄마는 피곤했겠지만 우리는 철없는 새끼 강아지들처럼 어미의 젖을 우악스럽게 빨아대려고 밥을 달라고 한다. 내색하지 않던 엄마, 지금의 나이에 두 살배기 딸내미를 키우시고 아들내미를 몸에 이고 있던 엄마. 

 가끔씩 그 모양이 그리워 신림동의 빌라를 찾아가려고 하지만 멀다는 핑계로 가지 않는다. 괜스레 어머니의 발걸음을 쫓다 애틋해질까봐, 뛰놀던 정글짐이 예전같지 않을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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