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에 잠식된 사회
숨을 쉴 수가 없다. 어제는 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눈가에 까칠한 무언가 걸려있음을 느꼈다. 모래판에서 씨름을 한 것도 아니고 해수욕장에서 구르다 온 것도 아닌데, 아니 단지 길을 걷다 온 것일 뿐인데 눈가에 모래 같은 무언가 걸려있는 현상. 이게 정말 정상적인 것인가? 분명 십 년 전쯤에는 이렇지 않았다. 십 년 전쯤에는 외출할 때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었단 말이다. 왜 우리는 꼬박꼬박 세금을 내가며 눈에 모래를 묻히고 살아야 하는가. 정확히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한번 제대로 검토해 볼 의향은 있기나 한 것인가.
숨 쉬고 싶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되찾고 싶다.
화력발전의 경제적인 장점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경제성 운운하며 화력발전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너에게,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고등어, 또는 무조건 중국이라며 뻔뻔하게 안면 몰수하는 너에게 미세먼지로 정성껏 구운 구름빵을 대접하고 싶은 건 어찌할 수 없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미세먼지 구름빵은 맛도 좋고 가격 또한 저렴해서 너의 가계(家計)에 전혀 부담을 주지 않을 테니.
자 먹어라, 너를 위해 준비한 빵이다. 네가 찬양하는 화력발전의 찬란한 결과물이다. 자, 먹어라.
먹으라고.
사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이것은 우리 욕망의 처절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것은 개인의 잘못도 아니고, 어떤 한 국가의 잘못도 아니며, 세계경제를 이끄는 대기업들의 잘못만도 아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기에 기업은 만들 뿐이고, 기업이 만들어야 하기에 국가는 기업과 발맞출 뿐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조금 염세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우리가 존재하기에 벌어진 결과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상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없다. 처참하고 슬프지만 그 누구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문제라는 명확한 인식을 머릿속에 탑재하고, 죽이 되던 밥이 되던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만이 우리 인간을 위대하고 고귀하게 만들어 준다고 믿는다.
그리고 진심으로, 우리 아이들 세대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