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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쓰는 팀장 Jul 14. 2021

턱걸이는 나의 인생

힘들어도좀 참자

 고3 시절 누구나 겪는 답답함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었다. 무기력과 긴장감이 날마다 교차하고, 확실치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자신감을 번복하며 더운 날씨에 지쳐갈 때쯤..... 나는 우연히 옆 짝의 필통 속을 지루함도 달랠 겸 보게 되었다. 필통 안쪽에는 화이트로 선명히 내 친한 친구의 좌우명이 적혀 있었다.


 ‘ 턱걸이는 나의 인생 ’ 

 늦은 밤 자습 중에 나는 순간 빵 터지고 말았다.   

 “ 하하하 턱걸이 ”

 “ 왜 턱걸이가 너의 인생이냐고?” 물어보았다. 

 “ 재밌잖아 ” 친구는 무심하게 대답하였다. 


 그 뒤로 나는 그 친구를 턱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친구는 실제로 팔 힘도 무척 세고 이두박근이 항상 성이 나 있었다. 나 또한 매우 슬림하던 시절이라 나와 친구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매일 같이 턱걸이를 하였고 학교 운동장 가장자리 철봉은 항상 우리의 쉼터인 동시에 체력단련 장소였다. 턱걸이가 지루해지면 철봉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땅에 발이 닿지 않고 왕복으로 원숭이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하나의 오락이었고 누가 많이, 오랫동안 떨어지지 않고 철봉 끝까지 가는 지를 항상 내기를 하곤 하였다. 가장 높이가 낮은 철봉에서 우리는 발이 땅에 닿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버티었다. 키가 큰 나는 가장 낮은 철봉이 나에게는 그야말로 난코스였다. 오락가락하다 중간에 팔 힘이 빠져 떨어지면 우리는 10대의 소녀마냥 그렇게 큰 소리로 웃곤 했다. 

   

 엉뚱한 좌우명을 가진 친구는 공부도 곧잘 하였고, 성적도 나보다 우수한, 반에서 항상 상위권이었다. 나의 턱걸이 친구는 몇 시간씩 책을 보고 공부를 하다가도 하루에 한 번은 항상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곤 하였다. 그러다 곧장 우울한 모드로 또다시 같은 페이지의 책을 몇 시간씩 들여다보았다. 무심한 성격인 나는 정말 괴짜 같은 친구라 생각하였고 눈 뜨고 잔다고 놀리곤 하였다. 

     

 그러다 우연히 ‘턱걸이’의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를 만나 3년 전 학교 소풍 때 사고 소식을 듣게 되었다. 3년 전 1학년 봄소풍 때 나도 사고소식을 들은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소풍 때 계곡에서 사진을 찍다 턱걸이가 농담으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뒤로 가라는 장난에 친구 2명이 계곡 쪽을 향해 뒷걸음치다 둘 다 계곡물에 빠진 사건이 이었다. 내가 들은 소문은 이러하지만 진위를 확인할 길이 업다. 전날 봄비가 많이 와서 계곡물이 많이 불어난 상태였고 계곡의 물살이 평소보다 세어서 1명이 익사하는 비참한 사고였다.     


 그 당시 우리 반은 다른 장소에서 소풍 중이었고, 사고 다음날 크나큰 불행은 학교에서 쉬쉬하는 통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 소문 자체를 듣지 못하였다. 나도 뭔가 사고가 있었다는 정도만 들은 기억이 난다. 그렇게 큰 사고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고3 시절 기억을 돌이켜 보면 학기 초부터 턱걸이의 아버지가 유난히 자주 학교를 방문하였고 맛있는 간식도 여러 번 사주신 것이 생각났고, 유난히 반 친구들이 턱걸이를 불편해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내가 너무 눈치와 센스가 없었던 거 같다.

       

 한 번은 턱걸이가 나에게 '너는 왜 나를 함부로 대하냐?'라고 웃으면서 물어본 적이 있었다. 함부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편하게 대하는 것이라 대답했다. 지금 생각하면 턱걸이는 선입견 없이 편하게 대하는 내가 이상했는지도 모르겠다. 

     

 고3 시절 한참 힘들고 민감한 시기에 큰 슬픔을 가슴에 품고 있는 친구는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자기 몸을 혹사할 만큼 그렇게 매일 쉬는 시간마다 턱걸이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또한 어떠했을까? 40대가 되고 10대의 자식을 둔 아빠가 된 나는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프다.  어린 나이이지만 자기의 아픔과 절망감, 죄책감을 이겨내기 위해 매일 턱걸이를 하며 자기의 마음을 다스려온 나의 친구가 나는 참으로 대견하다. 오죽하면 필통에다 ‘턱걸이는 나의 인생’이라고 적었을까? 그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의 친구는 가끔씩 문득 찾아오는 우울증을 이겨내며 홀로 외로이 슬픔을 뒤로하고 참으로 잘 이겨 내었다. 대견스럽다. 


 서울에 있는 명문 대학으로 진학한 턱걸이는 한동안 연락이 없다 제대 후 여자 친구와 함께 고향으로 놀러 와 나와 술 한 잔을 하였다. 하얗게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으며 얘기하던 나의 친구가 생각이 난다. 조만간 유학을 갈 것이라고 소식을 전한 뒤 연락이 끊겼지만 어디서든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금 우리네 세상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감염에 대한 불안감과 이웃과 친구를 예전처럼 대하지 못하는 더욱더 외로운 세상을 살고 있다. 실업에 대한 공포와 지속되는 불황으로 인한 빈곤과 질병의 두려움에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하지만 위기 때마다 우리의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나의 친구가 그랬듯이 ‘자기만의 턱걸이’로 이 상황을 잘 이겨내리라 믿는다. 각자 내재된 위기 때 사용할 위기극복 아이템이 있으리라.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잘 이겨낼 것이다.      

 주말과 저녁에 나는 드라마를 즐겨 본다. 와이프는 늘 TV만 본다고 나에게 늘 잔소리를 하지만 나는 항상 같은 대답을 한다.


 “드라마는 나의 인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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