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남은 2024년, 매일매일 나에게 고한다 [11]
위대한 작곡가는 영감을 받아 작곡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작곡을 시작하고 나서 영감을 받는다.
베토벤, 바그너, 모차르트, 바흐는 모두
날마다 마음을 다잡고 눈앞의 일에 정성을 기울였다.
그들은 영감을 기다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 어니스트 뉴먼 (음악 비평가) -
처음 글을 꾸준히 쓰게 되었을 때 나는 열두 살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어느 날 담임 선생님께서 방과 후에 바로 하교하지 않고 5학년 2반 교실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5, 6학년 학생들 몇 명을 모아 글짓기 지도를 받는, 일종의 ‘방과 후 수업’ 같은 것이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 방과 후 5학년 2반 교실에서 우리는 주어지는 주제에 따라 글을 썼고, 잘 쓴 글은 교단 앞에서 낭독했다.
바로 하교를 하지 못하고 글 쓰는 게 재미없을 때도 많아 사실 좀 싫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도 거기서 만나는, 글 잘 쓰는 언니들이 멋있고, 결석하면 큰 일 나는 줄 알고 열심히 출석했다.
항상 감탄이 나오는 글을 쓰고, 멋지고 예쁜 두 언니, 설희언니와 무영언니는 나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언니들도 아직 어린이였는데도, 내 기억에는 굉장히 어른스럽게 느껴졌다.
열세 살,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나이 어린 언니들은 나와 고작 한 살 차이인데 읽는 책과 쓰는 글부터 수준이 남달랐다.
특히, 기억에 또렷이 남은 것은 설희언니가 ‘파우스트’를 읽고 쓴 독후감을 낭독했고, 그 독후감에서 나는 ‘피비린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다.
이후 초등학교 6학년 때, 나도 ‘파우스트’를 읽어보겠다고 덤볐다가 하필 선택한 책이 외가에 있던 오래된 한자 섞인 책이라 끝내 완독 하지 못했다.
하기 싫은 날이 더 많았지만, 5학년 2반 교실에서 글을 쓰던 우리는 여러 백일장에 나갔고, 상을 탔다.
학교에서 어떤 이유로 ‘글짓기 반’을 만들었지는 모르겠지만, 일종의 ‘백일장 전략팀’이었던 우리는
덕분에 메달과 상패, 상금을 받으며 우리는 학교의 이름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월요일 조회 시간이면 학생들 앞에서 상을 받아 어깨에 한껏 뽕 좀 넣을 수 있었다.
우리 부모님께 나의 상들을 자랑거리였고, 내가 계속해서 자랑거리를 안겨드릴 것이라고 기대가 크셨다.
그런데 나는 중학생이 되면 내가 더 이상 상을 받기 힘들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나는 ‘파우스트’ 같은 어려운 책을 읽지 못했고, 나 스스로 설희언니와 무영언니처럼 특출 난 재능을 발견하지 못했다.
꾸준하게 글이 써지지도 않았고, 글의 완성도도 들쑥날쑥했다.
그저 어떤 ‘영감’ 같은 게 떠올라 글로 쓰면 상을 받곤 했는데, 그 ‘영감’이란 것에서 내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공부를 핑계로 (딱히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도 아니지만) 책과 멀어지고 있었고, 점점 더 현실적이 되어가던 나의 상상력도 시들해져가고 있었다.
부모님의 기대와 다르게, 나는 더 이상 ‘글을 써서 상을 받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저 찾아오지 않는 영감을 기다리는 아이였다.
그런데 회사를 그만둔 후,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고민을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건 글이었다.
회사 업무로 건조한 업무 글만 쓰던 나는 7년 전부터 본사의 홍보자료 번역을 해야 했다.
처음 해보는 일이었지만, 흥미를 느꼈고, 그때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업무 중 하나가 되었다.
내가 담당하는 브랜드의 특성상, 그 홍보자료한 것이 추상적이고 시적인 글들이어서, 번역이 꽤나 까다롭고 골치 아팠다.
영어사전과 국어사전, 유의어 등을 열심히 찾아가며 번역에 열과 성을 다했다.
매일 해야 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내가 그 일에 남들에 비해 많은 애정을 쏟은 만큼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업무였다.
나는 그렇게 다시 글과 가까워졌고, 회사를 그만둔 후 내가 지속할 수 있는 것 역시 글이 되었다.
SNS를 시작하며 글을 조금씩 쓰기 시작했는데, 내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는 것이 막막했다.
그래서 글쓰기 책들을 읽게 되었고, 그 책들은 하나같이 같은 조언을 했다.
일단 쓰라고, 계속 쓰라고. 하늘에서 내리는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계속해서 쓰면서 늘어가는 기술이라고 말이다.
책상 앞에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아 꾸준히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영감’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던 지난날의 내가 어리석게 느껴졌다.
재능이 있어야 한다고만 생각했던 것 역시 글을 쓰지 않을 핑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숫돌에 갈아야 하는 칼처럼, 대장간에서 벼려야 하는 도끼처럼, 계속해서 갈고 두드려야 연장은 무뎌지지 않는다.
천재 작곡가들도, 천부적인 재능의 작가들도, 영감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정성을 기울여 작품을 완성시키는데, 내가 감히 영감을 기다리다니! 부끄럽다.
이제부터 영감은 ‘기다리지 않고 내가 찾아’ 채우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