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남은 2024년, 매일매일 나에게 고한다 [4]
나이가 든다.
시간은 공평해서, 누구나 나이가 들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른 그 넓이와 깊이는 모두 똑같지는 않다.
나이가 들수록 경험과 지혜가 쌓여 사람은 더 넓고 깊어질 것 같지만,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 좁아지는 듯하다.
늘 만나던 사람들만 만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귀찮고, 새로운 모임에 참여하는 일은 왠지 부담스럽다.
일에 치여, 생활이 바빠, 스스로 행동반경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럴 시간에 잠이나 더 자겠다, 혼자 있고 싶다, 며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다고 말이다.
친구들도 각자 생활에 바빠 만날 사람들은 줄어들고, 결국 매일 만나는 사람들은 가족들과 직장 동료들 뿐이다.
나 역시 그랬다.
집-회사만 오가는 생활만 몇 년째, 친한 친구들과 왕래는커녕 연락도 자주 하지 못했다.
물론 언제 만나도 반가운 사이지만, 친구 만나는 일이 연례행사가 되어버렸다.
만날 여유가 많지 않은 만큼 정말 중요한 사람, 나에게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유발하지 않는, 만나면 좋은 사람들만 만나게 되었다.
나의 정신 건강에 해가 되는 만남을 자제하는 건 필요한 일이지만, 그랬더니… 나의 세상이 좁아져 있었다.
수다스럽고 쾌활하지만, 사실 나는 낯을 가리는 내향형이다.
아줌마가 된 후 많이 뻔뻔해져 더러는 스스로도 외향형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있지만, 여전히 혼자 있는 시간을 가장 좋아하고, 남의 시선이 나에게 향하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다. 회사까지 그만두고 나니,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 날도 부지기수, 나의 세상은 곧 우리 집 크기만큼 줄었고, 심지어 그마저도 식탁에 앉아 책 읽고, 뭔가 끼적이는 1평 남짓한 공간이 전부이게 되었다. 내가 좋아서 한 선택이긴 하지만, 나를 1평 공간에 가두어버렸다.
현재의 생활에 감사하고 만족스럽지만, 이미 많이 좁아진 나의 세상은 어느새 더 좁아졌다는 사실에 덜컥 겁이 난다.
세상이 좁아진다는 것은 내 시야가 좁아져 버린다는 의미이고, 편협한 사고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이미 나의 세상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감각이 둔해졌음을 느낀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매일 회의를 하고, 의견을 주고받으며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관점의 의견을 듣기도 했었다.
지금은 그 대상이 남편과 아이와 가끔 만나는 가족들, 어쩌다 만나는 이웃들 뿐인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가둔 결계를 끊고 나오기로 했다.
비록 온라인이지만, 함께 공부하는 스터디 파트너들,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북클럽 동지들.
나 혼자만의 세상에 있을 땐 그게 전부인 줄로만 알았던 생각들이 얼마나 큰 착각과 오만이었는지 매일 깨닫는다. 웃는 얼굴들 속에 남모를 아픔이 있고, 툭 던지는 재미난 말 한마디에 깊이 있는 통찰과 삶의 지혜가 들어있다. 새벽부터 끓어오르는 그들의 열정은 곧 나의 동기가 되고, 나에게 앞으로 나아갈 지점의 좌표이자 연료가 된다.
길에서 스쳐 지나쳤더라면 그 깊이를 전혀 짐작도 못했을 내 인생에 ’새로운 인연‘들이다.
나에게 긍정적인 에너지와 더 넓은 세상을 열어줄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세상 곳곳에는 아직 내가 만나지 못한 내 인생의 스승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