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드로잉 챌린지, 오늘은 14일차다.
함께하는 이(A)가 주차별 계획을 세우고, 그려야 할 이미지를 보내준다.
3주 차 첫 그림은 '시계'.
이미지를 본 순간, 마음속에서 작은 투덜거림이 새어 나왔다.
'난 어반스케치를 좀 더 잘하고 싶은 사람인데, 이렇게 사물 하나하나를 정밀묘사하듯 그려야 하나?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
대충 그려서 낼까? 하는 삐딱한 마음이 고개를 들 때쯤 A에게서 카톡 메시지 하나.
"복잡한 걸 해야 간단한 것도 그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띵했다.
이 단순하고 명쾌한 진리를 또 깜빡하고 있었다.
복잡한 것들을 단순화하고, 그 단순화한 것들을 루틴으로 만들어
'꾸준함'이라는 무기를 장착하려 애쓰던 내 일상의 노력들이,
어째서 그림에는 이어지지 못했던 걸까.
오늘 그린 시계그림은 아무것도 칠하지 않은 맨 얼굴 같은 밑그림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그림이다.
꽤나 공들여 그렸지만 그리 티가 나진 않는다.
그럼에도 시계처럼 보인다면 성공한 거다. (그럼, 나 성공한 거지? ^^ ㅎ)
복잡한 구조를 이해해야 단순한 선이 나온다.
그 선의 시작과 끝을 생각하며 한 호흡으로 그려내야 한다.
중간에 멈추면 선이 '꿀렁~'하고 만다.
그림을 찬찬히 뜯어보면 '꿀렁~'이는 순간들이 꽤 많다.
새벽 기상을 다짐했다가 이불의 유혹에 무너져버린 아침처럼,
의지와는 다르게 비뚤어져 버린 삶의 순간들 말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복잡한 문제들을 단순화하려면, 먼저 그것들을 분류하고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단순한 루틴으로 반복하며 습관으로 자리 잡아야
한 호흡으로 그 루틴을 지켜낼 수 있다.
그렇게 지켜낸 꾸준함이 내가 원하는 삶의 그림을 그려낼 수 있게 한다.
선만 긋는 그림이라 생각했지만,
어느새 생을 연결하는 법을 배우는 그림이 되어가는 듯하다.
선 하나에 나의 하루가 담기고,
면 하나에 나의 한 달이 담긴다.
그림 하나에는 결국 나의 삶이 스며들어,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완벽하게 매끈하지 않은,
군데군데 '꿀렁이는' 선들은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복잡함을 이해하고 단순함으로 나아가려 애쓴 나의 작은 분투다.
그걸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괜찮다.
어쩌면 당신의 삶에도 그런 '꿀렁임'이 있겠지.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서툰 선들을 보며,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말없이 다독여주는 일상을 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시계는 지금도 째깍인다.
내일의 나는 또 어떤 선을 그을까?
반듯할 수도, 또다시 꿀렁일 수도 있겠지.
뭐든! 어떠랴.
그 선들이 모여 또 나의 하루가 되고, 나의 삶이 될 테니.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