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캐스팅이라는 것을 몰랐던 중학생 시절에 오디션 보러오라고 명함을 받은 적이 있다. 하교하는 수많은 학생 사이에 이질감이 드는 성인 남성 한 명이 서성거렸는데, 누군가의 학부모도 아닌것 같은데 교문 앞 가운데서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녔다. 혹시 누굴 기다리는 것이라면 길 옆쪽에 서 있어야 마땅한데 그 남자는 애매한 발걸음으로 하굣길 중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피해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나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양복의 어른이 명함을 주고 가자 같은 반 친구가 옆에서 엿듣고 있다가 다가와서는 엑스트라 알바일 거라고 본인도 해봤다고 했다. 일은 엄청 힘든데 연예인 볼 수 있다는 말에 한 번 고생해서 추억 만들자는 생각으로 명함에 적힌 회사에 겁도 없이 약속을 잡고 찾아갔었다. 그 당시엔 네이버 지도나 카카오맵이 없는데도 친구랑 같이 무사히 잘 도착했다. 사실 은근한 마음으로는 나보다는 나랑 같이 간 친구가 회사 사람들 눈에 들기를 바랐다. 친구 따라 오디션 갔다가 본인이 데뷔하게 된 일화가 적지 않으니 그런 상상을 했고 그만큼 나는 연예인을 보고자 간 것뿐이고 다른 건 관심이 없었다.
친절하게 안내를 도와준 여직원분이 내가 알고 있는 만화가 선생님과 얼굴이 똑같아서 처음 뵙는데도 마치 아는 사람인 듯 긴장되지 않았다. 긴장되냐는 질문에 아는 만화가분 닮아서 긴장 안 된다고 하니, 그분도 디자인전공을 했었다고 말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림이라는 관심 분야를 묶음서서 낯섦을 풀어주려고 하시는 다정함이기도 했을 테고,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가 진로를 그림 쪽으로 가고 싶어 한다고 했더니 본인도 전공이 그림이었다가 방송일을 하게 되었다고 설득을 더 하셨던 것도 같다. 의자에 앉자 오디션 진행 방식과 회사 소개를 해주셨다. 오디션은 2회에 걸쳐서 진행되며, 1차 합격하면 2차를 보러 다시 와야 하며 며칠 뒤 최종 합격이 결정되는 방식이었다. 90년대생이면 다 알법한 <매직키드 마수리>,<요정컴미>,<울라불라 불루짱>등 청소년 드라마의 배우들이 있는 회사였고, 그 드라마에 쓰인 마법 소품들도 회사 한쪽 책장에 진열되어 있었다. 회사 소개를 들으며 마음속으로 <매직키드 마수리>가 짱이지. 뒤이어 방영한 <요정컴미>도 나름 아슬아슬하게 인정이지만 <울라불라 불라짱>*은 영 아니었지 라며 속으로 드라마 세 편에 대한 평을 했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 어린 학생이 바로 고아성 배우였다.
이어서 만화가 선생님을 닮은 그분을 따라가 유리로 만든 좁고 길쭉한 방에 들어갔다. 바닥에 표시가 되어 있는 곳에 서 있으라고 해서 섰더니 앞에 큰 카메라 렌즈를 통해 나를 찍으셨다. 앞모습을 찍고 몸을 돌려서 왼쪽 모습, 또다시 돌아서 뒷면 그다음은 오른쪽으로 x-ray를 찍듯이 꼼꼼하게 4면 촬영을 하셨고 그다음은 자신 있는 포즈를 하라고 하셨다. 속으로 엑스트라 알바일 뿐인데 카메라 테스트까지 하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 상황보다 더 이상한 건 내 포즈였다. 교실에서 그림만 그리는 구석 학생인 나에게 자신 있는 포즈 같은 건 당연히 없었고, 30분 같은 3초를 고민하다가 자리에서 팔짝 뛰며 활발한 척을 했다. 그 모습을 같이 온 친구가 안 봐서 정말 다행이다. 15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다시 떠올리면 평소의 나와 다른 인위적인 모습에 으악 소리가 절로 나온다. 오디션에 합격해서 연예인을 보고 싶다는 마음은 창피함에 밀려 잊혔다. 사람이 궁지 몰리면 안 하던 짓을 한다는 망연함이 발끝과 손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듯했지만, 창피하지 않을 방법은 최대한 창피하지 않은 척 하는 것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직원의 안내를 따라 유리방에서 나와 이번엔 평범한 방에 들어갔다.
소파와 테이블이 있는 방이었다. 직원에게 종이카드를 받았는데 4, 5줄 정도 되는 글이 적혀있었다. A4용지는 아니었고 분명 A4의 절반 정도 혹은 그것보다 작은 흰색 종이였다. 그냥 A4에 프린트해서 주면 될 텐데 돌이켜보니 굳이 왜 작은 종이에 줬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직원 언니는 종이에 적힌 글이 어디 드라마에 나오는 대본의 일부라고 했다. 그걸 잠시 뒤에 말로 해볼 테니 읽어보고 있으라며 혼자 있을 시간을 줬다. 대사의 주인공은 여학생이었는데,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용은 확실히 기억난다. ‘난 이제 피아노 안 칠 거예요! 엄마를 위한 피아노를 안 치고 나를 위해 피아노를 칠 거예요!’라는 내용이었다. 처음 읽었을 땐 난감했다. 피아노를 안 치겠다고 하더니 마지막엔 피아노를 치겠다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이지 하고 다시 읽어보니 엄마를 위해 안친다고 한다. 피아노를 치면 치는 거고 안 하면 때려치우는 거지 ‘누굴 위해 치는 것’이라는 말의 의미를 몰랐던 나는 그 짧은 문장을 다시 읽고 또다시 읽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의문이 충분히 풀리지 않을 시간에 직원이 웃으며 들어왔다. 읽어봤냐고 물으며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혼자 연기하는 게 다들 처음엔 어색해서 눈으로 한번 읽어만 보긴 하던데 라고 말을 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방에서 멍때리고 있을 거라고 예상하며 나의 민망함을 덜어주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문제를 풀다 막힌 학생처럼 이해가 가야지 말로 대사를 해볼 텐데 이해가 가지 않아서 못 했다고 말씀드렸다. 답을 알려줬으면 했는데 직원은 의외의 대답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대사를 이해하려고 했구나 라고만 말하고 답을 안 알려준 채로 나를 다시 카메라 앞에 세웠다. 없던 일로 치려고 했던 유리방에 다시 들어왔다.
아깐 모르는 걸 시키더니 이젠 모르는 감정을 내보라고 한다. 태어나서 본 카메라 중에 제일 큰 카메라 앞에 다시 섰다. ‘어른이 시켰으니 할 수 있는 만큼 하자’가 기본값이었던, 공부 빼고 다 착실했던 나는 대본을 보고 읽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라고 했는데 국어 시간에 교과서를 읽듯이 대본을 보고 읽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본 속에서 이해한 감정이 일단 ‘화남’이었으니 소리를 크게 내었지만, 대본 속 그 여학생은 그냥 분노만 가득 찬 게 아니라 엄마를 향한 무언가가 있는 듯했다. 대사를 말하면서도 그게 잘 이해가 안 되어서 소리가 호통치듯 나가지 않고 애매하게, 혹은 듣는 사람에게 또렷하게 들릴 정도의 크기로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속 시원하게 연기하지 못하고 말했다에 가까운 아쉬움이 남았다. 그게 1차 오디션의 마지막 과정이었다. 집에 갈 때 비가 왔고 만화가 선생님을 닮은 친절한 여직원분에게 2단 접이식 우산을 빌렸고, 2차 오디션을 보러 올 때 돌려드리기로 했다.* 며칠 뒤 2차는 볼 것도 없이 합격이라는 전화가 왔다. 엄마가 전화를 받으며 나를 보시더니 할 거냐고 물으셨다. 연기자가 되려면 연기학원에 등록해야 하는데 회사와 연계된 학원으로 소개를 진행한다고 했다. 그 당시 나에겐 학원생을 늘리려는 일종의 장사처럼 느껴졌다. 엑스트라 알바인 줄 알고 다녀왔는데 본격적인 과정인지 몰랐으니 거절해달라고 했다.
*1차 합격을 해야 2차를 볼 수 있다는 것 잘못 알아서, 2차까지 보고 합격이 결정 나는 줄 알았다.
아주 훗날, 아역배우부터 시작하려는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회사와 연동된 학원에 다니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그냥 학원에 등록하는 아이와 회사에서 캐스팅되어 오디션에 합격해서 데뷔 준비로 학원에 다니는 건 다르다는 정보도 들었다.
십오 년이 지난 지금도 대체 어느 점에서 나를 합격을 준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집에 있는 아무 옷을 입고 갔으며, 학교에서 외모로 눈에 띄는 학생도 아니었고, 오디션을 잘 봤냐고 물으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억지 텐션으로 밝은 척 폴짝 거렸던 민망한 제자리 뛰기와 단 몇 줄의 대사에 담긴 뜻도 이해하지 못해서 애매하게 카메라 앞에 섰던 나에게 2차는 볼 것도 없이 합격이라는 나름 인생 처음으로 수석 합격입니다. 같은 멘트를 날리다니. 너무 안 믿겨서 회사 설명을 열심히 해주며 신뢰를 만들려던 상냥한 직원분을 새까맣게 까먹고 오디션이 사기인 줄 알고 거절하지 않았는가.
그 당시 중학생인 나는 우산을 못 돌려줘서 어떡하나, 우산만 주러 가기엔 너무 먼 길이었는데 라는 걱정만 있었지, 인생의 다른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자각이 없었다. 스무 살이 넘어서 한동안 이 시기를 돌이켜보며 만약 연기 쪽으로 진행이 되었다면 미래가 바뀌었을까 생각도 해봤다. 서른이 넘은 지금은 깔짝거리는 어떤 재주 같은 것으로는 오래 일을 못하는 분야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어서 나도 금방 관뒀거나 내쳐졌겠다 싶다. 지금의 아쉬움은 친절한 직원분에게 우산을 못 돌려줬다는것. 그것이 값싼 비닐우산이 아니라 체크무늬의 접이식 2단 우산이었는데 혹시 우산이 돌아오지 않은 것이 그분을 곤란하게 만들지 않았을지. 낯선 곳에서 긴장하지 않도록 상냥한 웃음과 ‘다들 그렇더라고’, ’괜찮아’ 같은 말을 해준 친절에 감사했다는 말과 함께 우산을 돌려드리고 싶었는데, 하는 마음만 십오 년이 넘도록 간직하고 있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얼굴도 이름도 기억이 안 나고 상냥한 말들과 친절했던 행동들만 기억이 납니다. 배우 오디션을 보겠다며 멀리까지 찾아와놓고는 안 하겠다고 하니, 오디션 보러온 애가 좀 이상하지 않았냐는 상사의 질문을 받지는 않으셨는지요. 그 당시 20대~30대 초반 이셨을 테니 15년이 지난 지금은 30대~40대 중반 나이가 되셨겠네요. 다정한 마음을 품은 분이니 힘들다는 방송 쪽 일과는 맞지 않아서 다른 일을 하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전공이 디자인이라고 하셨는데 혹시 관련된 일을 하고 계실까요. 오디션을 보러 간 날에 우산을 빌려 갔는데, 합격 해놓고는 배우를 안 한다고 하는 바람에 우산도 같이 못 드리게 되어서 마음이 쓰입니다. 사실은 빌려주셨던 우산은 회사에 돌아다니는 주인 없는 물건이었고, 싫어하는 직장 상사가 우산이 필요할 때 찾다가 물었을 때 새침 떼셨기를 바라요. 다정한 마음을 받고는, 누군가를 곤란하게 만드는 못된 마음으로 갚아봅니다. 그날 참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10대때 추억 하나 더 간직하고 살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