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알아주는 곳에서 일을 하세요. 이 말을 어디선가 들었을 때는 뻔한 말이라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고,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기준이 참 주관적이라 동의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기준이 없는 그 말을 방패 삼아 일을 쉽게 관둬서 ‘요즘 젊은 애들은 끈기가 없어서 회사도 금방 관둔다’라며 혀를 차는 어른들의 말에 증거물이 되긴 싫었다. 그러다 보니 모두가 안고 사는 고통의 통증만큼은 견딜 수 있어야 기본적인 맷집을 갖춘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마치 개인의 통증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아내어 그들의 평균치 불행을 수치로 계산한 뒤에 딱 그 정도를 골라서 가져가려는 듯이.
새로운 회사에 신입으로 들어간 지 1년도 채 안 되었을 시기쯤부터 사무실 근무자들이 내 모습을 구기고 있음이 느껴졌다. 나에게 좋은 이야기가 안 오는 만큼 다른 직원들은 정상적인 근무를 하는 매끄러운 일꾼이 되고 있었다. 그 분위기는 작은 졸개들의 팀워크로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내가 일에 미숙해서인가 내가 잘하면 되는 건가 고민했다. 단박에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 T*성향 언니의 조언을 들은바 회사에 부당함을 이야기하고 당당하게 굴 것이며 이직 준비를 하라고 했다.
*MBTI의 유형. 분석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판단하는 사고형.
들이박고 싶어도 충돌을 어려워하는 내 성향에 시원한 성격의 언니는 답답해했지만, 나름 노력을 해서 해야 할 말을 몇 마디 했다. 그럼에도 팀플레이로 조여오는 사무실 안에서 마음을 빳빳이 펴내기는 힘들었다. 최소한 1년은 채우고 싶었다. 1년을 못 채운다면 적어도 권고사직을 받아내서 실업급여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버티고 앉아 있는 동안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다. 코딩은 전혀 모르는 신입 디자이너에게 한 달 반의 기간을 줄 테니 코딩을 구축해서 홈페이지를 새로 만들라고 하고, 회식 자리에서 다 같이 있을 때는 음식을 챙겨주고는 이윽고 따로 불러내서 본인이 마음먹으면 스스로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게 만들 수 있는데, 그렇게 안 하고 착하게 대해주고 있으니 잘하라는 말을 하는 것 등의 태도가 겹치고 겹쳤다. 자신을 알아주는 곳에서 일하세요. 그 말에 순응하지 않고 어디를 가서도 잘 버텨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그’ 회사생활을 못 하는 ‘그곳’의 부적응자가 되어 나왔다.
새로운 곳에서 면접을 볼 때는 전임자가 무단결근으로 퇴사해서 일하는 동안 내 자리를 오가며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사원이 힘들어지기 전에 예방할 수 있는 게 있는지 신경을 쓰겠다는 것이라고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감시가 될 수 있었다. 참견을 많이 하시려나 보다 하고 마음의 각오를 했지만, 초반 일주일 정도만 오가더니 그 이후는 방치일 정도로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입사 후 몇 개월이 지나 나를 따로 불렀다. 대표실까지 걸어가는 2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걱정했다. 뭔가 잘못한 게 있나 집히는 게 없는데, 잘못하지 않아도 잘못으로 만들 수도 있지 하며 전 직장에서의 기억들이 덮어져서 심호흡하고 얼굴을 평소와 같이 유지했다.
마주 앉은 자리에서 어영부영 오간 대화는 일하면서 힘든 게 없는지였다. 힘들 게 있어야 하나 아니면 없다고 해야 하나 어느 게 원하는 답인가 고민이 잠시 들었지만, 날 것의 답을 내놓았다. 힘든 거 없고 수월하다고. 순간적으로 전 회사 대표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라면 분명 힘든 게 정말 없어요?라며 배려의 문장인 척, 네가 일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라는 의미를 담아서 독심술이 있어야 가능한 대표의 불만을 알아맞힐 때까지 나를 황태채처럼 말려놓고 결국엔 멍청하네 라는 말을 ‘다른 방법을 찾아보고 부장이랑 얘기해 봐요’라며 돌려보낸 후 직속 상사인 부장을 불러서 불투명 유리 안에서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삼십 분 뒤 부장이 나를 데리고 나가서 말린 황태를 방망이로 두들기는 일이 반복되었을 것이다.
찰나의 여백 동안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장면들이 끝나자, 현 직장 대표가 일을 잘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신경 쓸 게 없어서 참견을 하지 않았는데 그게 혹시 섭섭하게 하지 않았는지 걱정을 덧대었다. 의외의 답을 들은 나는 아 그렇지 나는 잘못한 게 없잖아하며 깨달은 듯이 시원해졌다. 어두운 영화관에서 끔찍한 내용을 몰두해서 보다가 영상이 끝나고 불이 켜지는 듯했다. 이 회사의 면접 날 때 나는 가식없이 투명하게 행동했다. 어느 것이 상대가 원하는 답인지 추리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어떤 사람인지 알겠다며 출근하라고 했던 대표였다.
일터도, 친구 관계도 내가 생각하는 나와 최대한 비슷하게 나를 대해주는 사람들이 내 일상을 지켜준다. ‘네가 그렇지 뭐’라며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도 있고, ‘네가 그렇지 뭐’하고 크고 작은 일을 시트콤의 한 회차처럼 웃고 지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들도 있다. 각자 나를 보는 것, 혹은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이 있는 것이겠지 싶다. 100명이 나를 본다면 100개의 내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지만, 시선이 맞는 이들과 함께하고 싶은 것은 좋아하는 것만 곁에 두려는 나약함이 아닌 일상을 지키고자 하는 강인한 본능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