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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얀 Apr 13. 2024

일곱 귀신의 Identity, 육의 미션 <2>

나태(懶怠)와 간린(慳吝)


귀신들은 시간을 쉽게 버리게 만든다. 시간이 곧 생명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숨을 쉬고 있는 일분 일초가 생명이다. 당신이 신을 믿던 믿지 않던 또는 외계인을 믿던 간에 “인간에게는 시간이 주어진 상태다.” 종교 관련 이야기가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미리 전제한다. 이 명제는 가치중립적이다.


“인간이 사고나 질병, 노환 같은 특정한 계기를 통해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회수 되어진다.” 이제 시간이 생명이라는 말의 의미가 조금 더 와닿는가?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에 가면 이 명제들은 보다 더 분명하게 와 닿는다.


호스피스 병상에 누워 있는 이들이 간절하게 원하는 건 완쾌가 아니다. ‘소중한 사람들과 조금 더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다.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설 즈음이면 완쾌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그들도 잘 안다. 그들은 남은 시간을 남겨질 사람들과 잘 마무리하기 위해 죽음, 즉 다가올 ‘시간의 종말’을 준비한다. 당신의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순간일 수 있다는 말은 이 병동에 들어서면 절실히 깨닫게 된다.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시간을 나눈다는 의미는 생명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와도 같다. ‘시간’ 개념은 과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차원을 구분해주는 주요 속성 중 하나도 ‘시간’이다. 우리가 4차원 이상의 세계를 경험하려면 ‘시간을 넘어가야’ 한다. 같은 결에서 시간을 버린다는 것은 생명을 버린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귀신들은 시간을 버리게 만든다.


내가 아닌 귀신이 나를 살아가게 되면 나태(懶怠, 게으르고 성실하지 못함)가 가장 먼저 찾아온다. 삶의 의미를 잃게 만들기 때문에 ‘어떤 것을 해야 할 의지’를 잃게 만들고, ‘한없는 무력함’으로 몰고간다.


마음에 병이 들면 그가 머물고 있는 ‘공간’이 가장 먼저 망가지기 시작하는 건 그 때문이다. 마치 바이러스가 정상 세포를 병들게 하는 것처럼 그와 접점에 닿아 있는 모든 것들이 함께 병들어 가기 시작한다. 그를 둘러싼 세계가 병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자기 연민’과 ‘우울함’이 동반되며 마음의 시야가 점차 차단되기 시작한다. 마음의 시야가 차단되면 여유가 없어지고 여유가 없어지면 타인과 마음을 나눌 수 없게 되어 곧 간린(慳吝 , 하는 짓이 소심하고 인색함)의 귀신이 찾아든다.


이 귀신이 들면 타인과의 교류가 크게 의미가 없어져 점차 고립되게 되고, 지극히 이기적인 사람으로 변모하게 된다. 막연한 두려움이 커지고, 피해 의식과 콤플렉스가 가속화 된다. 이런 불안정한 심리 상태에선 타인을 쉽게 오해하고 타인으로부터 상처도 잘 받는다.


이런 사람들은 늘 스스로가 불행하고 불쌍하다 생각하기에 주변 사람들의 진을 빼고 기를 빨아들인다. 그가 살아가는 시간이 전혀 행복하지 않기에 시간을 자꾸 버리게 된다. 보다 효과적으로 시간을 버리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찾아가다 마침내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영구히 버리게 된다. 세상 속에서 한 사람의 Identity와 Mission이 무엇이었는지 영원히 잊게 만드는 게 이 귀신들의 목적이다. 이렇게 한 영혼의 시간을 마음껏 섭취한 귀신은 다음 타겟을 찾아 나선다.


교오(驕傲)와 질투(嫉妬), 분노(忿怒 · 憤怒)

Identity가 무르익지 않은 상황에서 Mission을 달성하게 되면 교오(驕傲, 교만하고 오만하여 남을 업신여김)의 귀신이 찾아 든다. 이 귀신은 당장의 성공에 취하도록 나르시즘의 거울을 양심 앞에 두어 성찰의 눈을 멀게 한다. 교오(驕傲)의 귀신에 사로잡힌 이는 타인의 얼굴을 밟고 서는 걸 좋아한다. 이런 이들과의 대화는 늘 얼굴이 밟혀진 상태에서 전개되어 유쾌하지 않다.


성찰의 눈이 이미 먼 상태라 점차 영혼의 악취가 심해져 멸시와 조롱이 따라 붙지만 교오(驕傲)의 귀신이 귀를 단단히 틀어막고 있어 잘 듣지도 못한다. 이들은 자기 도취에 빠져 실천은 없고 목표만 높은 허황된 Miss ion만을 추구해 Mission이 계속해서 수시로 바뀌거나 달성되지 못하고 폐기되는 경우가 잦다. 


교오(驕傲)의 귀신은 땅에 깃들어 있는 겸손을 극도로 두려워 한다. 때문에 이들은 땅에 발을 댈 수 없어 끊임없이 남을 험담하며 그들이 밟고 설 얼굴을 찾아다닌다. 끊임없이 밟을 얼굴을 찾다보니 이들의 시선은 늘

‘남’에게 가 있다.


온전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가 없다. 간혹 도저히 밟을 수 없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질투(嫉妬, 우월한 사람을 시기함)의 귀신까지 불러들인다. 실력으로는 그 사람을 밟을 수 없게 되니, 분쟁과 갈등, 모함을 총동원한다. 종국엔 이유도 상실한 채 맹목적인 비난으로 대상을 무조건 파괴하려는 폭력적 양상을 띄게 된다. 이 질투는 곧 분노(忿怒 · 憤怒, 분에 겨워 몹시 화를 냄)로 얼굴을 바꾼다. 분노와 질투는 한 몸에 두 얼굴을 지니고 있는 귀신으로 늘 함께 다닌다. 이런 분노가 힘을 가지면 물리적 폭력이 된다. 교활함을 만나면 다양한 종류의 거짓과 흉계를 만들어낸다. 이들의 육(肉)의 Mission은 질투하는 대상의 궤멸적 파괴다.


탐도(貪饕)와 미색(迷色)


한번 성공을 거둔 폭력은 당사자를 더욱더 교오(驕傲)하게 만든다. 이들의 내면에는 거대한 불이 자리하게 되어 끊임없이 에너지를 불살라 버리기 늘 마음이  허기져 있게 된다. 이런 내면의 끊임없는 허기짐은 탐도(貪饕, 음식이나 재물을 탐하여 지나칠 정도로 먹고 마심)와 미색(迷色,성욕의 노예가 되어 사물을 올바르게 보지 못함)의 귀신을 불러들인다.


탐도(貪饕)는 사람을 음식과 재물을 향해 물불 안 가리고 돌진하는 돼지로 만든다. 당장 자신의 내면의 허기짐을 채우는 게 지상 최대의 Mission이 되게 하여 사람이라면 응당 갖춰야 할 기본적인 도리(道理)와 격(格)을 잃게 만든다. 탐도의 귀신에 들려 돼지로 변한 이들은 돼지의 낯가죽을 갖게 되어 부끄러움을 모르게 된다.


이들이 취하고 쌓아 올린 부(富)는 똥물 한가운데 잠긴 보석상자 같아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더 사치한다. 사치를 통해 그들의 노력을 대외적으로 인정 받고 싶어하지만 아무도 그들의 부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돈 냄새를 맡은 파리떼들만 곁에 머물기에 이들 곁엔 진실된 관계가 없다. 기만과 거짓, 위선으로 포위된 한없이 불행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미색(迷色)은 사람을 하나의 거대한 생식기로 만들어 버린다. 해서 오로지 생식기의 명령에 따라 배설할 곳만 찾아 헤매이게 된다. 처음엔 스스로의 몸을 사용해 배설을 시작한다. 모든 욕망이 그렇듯 점점 더 큰 자극을 갈구하게 만들어 주변에 배설할 곳을 찾아 다니기 시작하고, 종국에는 범죄로까지 나아간다. 이런 이들이 재(財)와 미(美)를 겸비하게 되면 많은 관계들이 훼손되고, 많은 사람들의 삶이 파탄에 빠진다. 생명의 원천이었던 성은 욕망의 원천으로 전락해 인간의 기품과 존엄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관계에 깊이 라곤 찾아볼 수 없는 끝이 없는 공허의 터널만 남기는 배설의 삶을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미색의 귀신들은 그들의 귓가에 이건 사랑이라는 말로 끊임없이 합리화 시킨다.


하지만 진짜 사랑은 이런 것이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코린토전서 3장 3절에서 7절>

내가 수도원에서 환속해 다시 세상의 삶을 살아가야 했을 때 몇 년 동안은 위에 언급한 일곱 귀신을 모두 불러들여 황폐하기 그지없는 빛을 잃은 어둠의 삶을 살아갔었다. 마치 긴 머리카락을 잃은 삼손처럼 모든 힘을 잃고 시체가 되었었다. 그때의 삶이 얼마나 무미건조했던지, 얼마나 지루했던지, 우울함마저 사치같았던 그 흑빛 가득찼던 삶은 공동체로부터 유리된 나병 환자의 삶과 하나 다를 게 없었다.



★ 본 원고는 세 번째 출간 예정작인 <Mission, 카이로스의 시간>의 초고입니다. <Mission, 카이로스의 시간><백년병원> 챕터 1의 심화 버전으로 기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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