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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Dec 31. 2018

외쳐보고 싶은 '브라보'

왜 나는 항상 눈치를 보는 것일까

외쳐보고 싶은 '브라보'



- 왜 나는 항상 눈치를 보는 것일까

- 내가 군대에서 배웠던 것은





언제쯤 브라보를 외칠 수 있는 것일까.  ©leewoo, 2017





내겐 꼭 해보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 사실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 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았다. 하지만 단 한 번도 해보질 못했다.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콘서트홀에서 연주나 공연이 끝나면 브라보를 외쳐보는 것이다. 브라보! 식장에는 언제나 연주가 끝나면 브라보를 외치는 사람이 있었다. 홀에 울려 퍼지는 어느 관객의 함성, 브라보! 언제나 그것을 해보고 싶었다.



나는 그것이 연주를 관람하고 감동을 느낀 관객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답례가 아닐까 생각한다. 박수갈채로도 모자라 크게 소리치는 것이다. 브라보! 물론 나도 박수 이상으로 나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소리친다는 것이 여간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한다. 그럴 때면 어쩔 수 없이 입을 앙 다문 채 더욱 힘껏 손뼉을 칠 뿐이다.


물론 상상은 수도 없이 해보았다. 당당히 브라보를 외치는 나의 모습을 말이다. 하지만 그 상상 만으로도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그 이후의 일들이 눈앞에 그려지기 때문이었다. 브라보를 외친다. 갑자기 사람들이 쳐다본다.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누군가의 제재를 받는다. 알겠어요. 나는 의기소침해지고 마는 것이다. 입은 앙 다문 채 그저 열심히 손뼉을 친다. 여느 평범한 관람객들처럼.



나는 이러한 두려움의 기저에는 하나의 사고 회로가 개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잘 조련되었던 것이었다. 어른들은 항상 말했다. 튀려고 하지 마라. 남들 하는 만큼만 해라. 나서지 좀 마라. 평범하게 좀 살아라. 별난 것 좀 하지 말아라. 물론 언제나 반항해왔지만, 어렴풋이 그들의 말을 새겨듣게 되었다. 반항 속에서도 이렇게 하면 문제가 생기는구나, 피곤해지는구나, 조금씩 깨닫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 회로가 무의식의 영역에 뿌리 깊게 자리 잡게 된 것은 군 복무 시절부터였다. 무조건 복종을 강요하는 군대에서는 개성을 갖는 것 자체가 죄악이 되고 만다. 새꺄, 나 때는 더 좆같았어. 넌 더 한창 할 때야. 더 기어 다녀. 알아서 기라고. 네 선임 좀 보고 배워. 딱 저만큼만 하라고. 아, 실로 자명한 진리인 것이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평범해져야 한다. 복종해야만 한다. 눈치가 빨라야 한다. 개성적인 개체가 아닌, 집단의 보편적인 일원이 되어야 한다. 흐려져야 한다. 색깔을 잃어야 한다. 그렇게 2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대한민국의 군필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너는 군대부터 다녀와봐야 돼.” 이 말이 쓰일 때는 대개 눈치 없는 사람, 자기 주관이 센 사람, 그리고 다수의 의견에 따르지 않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는 미명 아래 사실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니다. 평범하게 집단 속에 동화되는 것, 복종하는 것, 따르는 것, 의문을 갖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평범하게 군 복무를 마친 예비역들은 하나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 괜한 곳에서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 예비군 훈련을 가도 무언가 할라치면 자신이 나서서 하겠다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나서면 피곤해진 다는 걸 다들 알고 있는 것이다. 나서지 마라. 튀려고 하지 마라. 남들 하는 만큼 해라. 상식을 갖고 살아라. 평범하게 행동해라. 이것이 우리 사회의 저변에 깔려있는 무의식적 사고 회로인 것이다.



나 역시 사회적 인간인 것일까. 브라보 한 번 외치는 것이 뭐 그리 어렵다고, 외칠 생각만 해도 식은땀부터 흐른다. 걱정부터 드는 것이다. 괜히 나서는 것이 아닌가, 괜히 튀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이곳에는 나를 가르치던, 훈계하던 어른도, 선임도, 간부들도 없는데. 나는 손뼉을 치며 생각한다. 나는 그저 잘 조련된 파블로프의 개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언제쯤 브라보를 외칠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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