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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Mar 02. 2018

테니스 코트에서의 불안

<테니스 코트에서의 불안>



'숙원사업'에 열을 올렸던 모로코에서의 어느 날.





많은 글을 써왔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부단하게도 글을 써왔다. 무엇에 대한 글이었나, 진지하게 이야기하자면 이 밤을 모두 할애한대도 시간이 부족할 것 같다. 하지만 쉽게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내게 글을 쓴다는 것, 그동안 써온 글은 일종의 과거와의 대화였다. 과거, 지나가버린 시간, 경험했던 것들, 만났던 사람들, 좀처럼 잊을 수 없는 상처들, 그리고 아직도 잔상처럼 눈앞을 어른거리는 강렬한 인상들. 나는 그 불연속적인 파편들 속으로 몸을 던져야만 했다. 그곳에 내가 찾는 무언가가 있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허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다만, 과거의 조각들 속에서 헤엄치다 보니 점점 짙어지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기억 속에 쌓인 그 일련의 감각과 인식으로 이루어진 과거라는 것은 결코 ‘주체’ 없이 분석될 수 없는 것이었다. 과거는 바로 주체로서의 경험 이외의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바로 과거에서의 허덕임과, 그에 따른 자기 인식의 과정에 문학을 이용했다. 과거라는 질료를 문학이라는 용광로에 집어넣었더니 그곳에서 예기치도 못하게 나 자신이俄 환원되었던 것이다.

그 자기 인식의 과정 속에서 나는 희열마저 느꼈다. 그곳에서 실로 값진 유의미들을 발견했던 것이다. 모든 일련의 사건들은 필연성을 갖고 있었으며, 또 모든 경험과 인식들은 개연성을 갖고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필연성과 개연성으로 주조된 ‘나’를 발견했다. 나에 대해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디로부터 어디로 가는지, 이제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확신했다. 앞으로의 인생에 불안은 없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 모든 숙원사업이 끝나가는 이 시점에서, 나는 역설적이게도 극심한 불안을 느낀다. 과거의 회상 속에서 ‘나’ 자신을 규명했지만, 현재의 삶 속에서의 ‘나’ 자신은 간과했던 것이다. 현재의 삶에는 현재 진행 중인 미스터리들이 산적해있다. 그것은 내가 몸담고 있는 파도이자 대양으로 지금도 끊임없이 요동치고 있다. 과거는 불변의 것이지만, 현재는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가소성可塑性을 띄고 있는 그 무엇이었다. 때문에 현재에 대해서는 쓸 수 없었다. 사실로서의 기록은 가능한 것이었지만, 그 속에서 일련의 필연성과 개연성을 찾기란 불가능했다.

삶을 테니스 경기장으로 끌고 와보자. 하나의 매치를 인생이라고 비유할 때, 나는 그저 앞서 끝난 몇 개의 세트를 고찰해보았을 뿐인 것이다. 언제나 왈가왈부하며 유의미를 찾아낼 수 있은 것은 언제나 일단락 지어진 것들이다. 나는 이미 끝이 난 몇 개의 세트를 헤아려보곤 전체 매치에 대해 헤아린 듯 착각했던 것이다. 허나 남은 모든 세트가 끝이나야 하나의 인생이라는 매치를 헤아릴 수 있는 법이다.

아, 나는 인생의 유의미를 찾았노라고, 이제는 인생에 대해 좀 알겠다고 확신했었는데. 네트 너머에서 자꾸만 공이 날라온다. 나는 당황하고 마는 것이다. 지난 세트에 대해서는 펜을 들고 이야기하고 분석할 수 있었지만, 날아오는 공에는 라켓을 들어야 한다. 지금 이 세트에 대해서는 ‘아직’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야기가 아니라 경험해야 하는 것이다. 아, 소설가라고 젠체하지 말라! 테니스 코트에 펜을 들고 서있는 나는 한낮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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