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 사막에서 남루하게 걷다
사하라 사막의 새벽.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달빛과 별빛에 젖은 사막을 몽유병 환자처럼 헤매고 다녔다. 꿈속을 헤매다 지쳐 베르베르인 천막으로 들어갔고, 잠자리에 눕자마자 이내 꿈에 빠져들었다. 새벽 다섯 시, 베르베르인 사내가 잠을 깨웠다. 분명 달콤한 꿈이었는데. 이것도 꿈속의 꿈인가. 그는 꿈에 취한 내게 말했다. 마을로 일찍 돌아가야 한다고. 나는 몽롱한 상태로 낙타의 등에 올라타 사막을 떠다니기 시작했다.
아직 사하라는 어스름에 잠겨 있었다. 얼마나 나아갔을까, 문득 낙타의 고삐를 잡은 채 두 발로 사막을 거니는 베르베르 사내가 부러워 보였다. 나는 낙타의 흔들림을 온몸으로 감내하며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는 두 발로 꼿꼿하게 서서 흔들림 없이 나아가고 있었다. 낙타의 흔들림 때문인지 나 자신이 멍청해지는 것만 같았다. 나도 사막을 두 발로 걷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낙타의 등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사내는 흠칫 놀라더니, 내가 걷고 싶다고 하자 고갤 끄덕였다.
그렇게 나는 고삐를 잡고 낙타 무리를 이끌며 앞장서 걸어가는 베르베르인 사내와 함께 묵묵히 걸어갔다. 두 시간여를 그렇게 아무 말없이. 밤새 바람이 모든 자취를 지워놓은 사막에 낙타보다도 먼저 발자국을 남겼다. 이른 아침, 밤새 내린 눈 위에 첫 발을 내딛었던 어린 시절의 어느 날처럼, 가슴이 설레였다. 마치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의 주인공 산티아고가 된 것은 황홀한 기분이었다.
역시 직접 걷는 것이 나의 체질에 더 잘 맞았다. 이동 수단에 앉아 있으면 조금은 멍청해지기 마련이다. 때로는 가당치도 않은 높이에서 오만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두 다리로 직접 걸을 때면 조금은 현명해지는 기분이다. 육체적 한계를 몸소 체감하고 직면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생각하게 된다. 겸허히 성찰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동 수단 위에 앉게 되면 우리는 나태함과 나른함에 빠지게 된다. 우리가 좌석에 앉아하는 것이라곤 가장 편안한 자세를 찾아 잠에 빠져드는 것뿐이지 않던가. 어쩌면 우리는 두 발로 걸으면서 보다 인간다워지는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 진화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걷는 동안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걷고 난 후의 우리는 걷기 이전보다 조금은 성장해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사실 엄청난 걸 깨달은 것도, 위대한 결론을 내린 것도, 굳은 결심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인간의 높이에서 인간의 속도로 걸으며, 남루한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꼈을 뿐이었다. 그리고 곁에서 무언가를 쩝쩝 거리며 되새김질하는 낙타처럼, 곱씹어 볼 뿐이었다. 여전히 같은 고민, 같은 문제, 같은 열망에 대해서.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
그것만으로도 걸을 이유가 충분했다. 걷는 것이 행복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쯤엔 저 멀리 사하라의 지평선 너머로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묵묵하고 겸허하게 땀 흘리며 걸어서였을까, 눈앞에 펼쳐진 일출마저 가슴 벅찰 정도로 아름답게 보였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길이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되도록 많이 걸어봐야겠다고. 남루하고 겸허하게. 나는 아직도 어리석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