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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Aug 28. 2019

전역자의 딜레마

돌아가기 싫지만, 돌아가고 싶은 현역 시절에 대하여



군 시절 장병들은 희망으로 가득 차있다. 그들은 통제와 의무의 시간 속에서 전역하면 시작될 새로운 삶의 청사진을 몇 번이나 그려보곤 한다. 그래, 나는 전역을 하면 이 길로 갈 거야. 이걸 할 거야. 이렇게 살 거야. 하지만 장병들은 정작 전역을 하면 청사진과는 전혀 다른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나태하고 게으르고 포기와 체념을 일삼으며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자극적인 것들과 보편적인 가치, 그리고 대중적 슬로건에 휩쓸리는 자신의 모습을. 전역자의 꿈은 그저 한여름밤의 꿈이 되고 만다.

열정에 넘쳤던 군 시절처럼 살아보고 싶어 몽골에 군복을 챙겨 입고 갔다. 한 달 여의 훈련 기간을 가졌다. 전투적으로 초원과 호숫가를 배회하며 책을 읽고, 소설을 썼으며, 원고를 퇴고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달콤한 미래를 꿈꾸었다. 어느덧 군 복무는 종료되었고, 전역해 한국에 돌아온 지 이틀 째이다. 짧았던 군 시절의 목표와 꿈들을 떠올려본다. 일상의 템포 속에서 얼마만큼이나 이것들을 지탱할 수 있었던가. 고작 하루 일과의 끝에 책상 앞에 앉아 잠시나마 떠올려 볼 뿐이다. 아, 참 내가 그랬었지. 그래 맞아, 그땐 그랬었는데.

아, 전역은 사실 꿈의 시작이 아니라 꿈에서 깬 것뿐이었단 말인가! 꿈에 젖어 살던 부자유의 나날이, 꿈이 망각되는 나날보다 사실 더 달콤하지 않았던가! 이제 전역자는 딜레마에 빠지고 만다. 그토록 원했던 전역보다, 전역을 갈망했던 군 시절이 더 그리워지고 만 것이다. 그는 옷장을 뒤져 다시 군복을 꺼내본다. 유효기간이 끝나버린 군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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