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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Jan 08. 2020

자고 싶다

불면증에도 불구하고 잘 자고 싶은 욕망에 대하여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자고 싶다'라는 책을 집필하고 있다는 요니킴 작가님이 물었다. 잠들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느냐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잠에도 노력이 필요한가 하는 의문이었다. 내가 머뭇거리자 작가님은 자신이 인터뷰한 일례를 들어주었다. 보통 사람들은 잠들기 위해 완벽한 어둠을 만든다거나, 단순하고 반복적인 게임을 한다던가,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던가, 감정적인 생각에 잠긴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곤 아무리 생각해보았지만 나는 그러한 노력을 한 적이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세상은 잠을 줄이는 것이 미덕이라고 가르쳤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밤 잠을 줄여야 하며, 새벽 늦게 잠들어야 하고, 코피도 쏟아봐야 한다고 했다. 학창 시절 어른들에게 주야장천 들었던 말이었다. 듣기 싫은 말이었지만, 부지불식간에 믿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학창 시절에 게으르고 공부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공부하는데 잠을 줄이지 않았다. 무언가를 위해 밤을 새웠던 것은 게임 스타크래프트뿐이었다. 실력은 늘었으니 잠을 줄이는 것의 효과는 얼추 알게 되었다.


게임이 아닌 무언가를 원하게 된 건 스무 살 무렵이었다. 대학에도 가지 않았던 나는 결심을 하나 했다. 친구들이 대학에서 공부할 4년이라는 시간을 가치 있게 시간을 쓰자. 그래서 내린 결심이 다독이었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읽고 또 읽었다. 열심히 하는 건 이상하게도 밤을 지새우게 했다. 군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군대의 취침 시간은 10시였다. 하지만 나는 12시에 잤다. 불침번을 스는 날도, 새벽 경계 근무가 있는 날도, 훈련이 있는 날도 언제나 12시에 잤다. 주어진 2시간 동안 늘 책을 읽었다.


늦깎이 대학생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늘 책을 읽었고, 책을 더 많이 읽기 위해 잠을 줄였다. 그렇다고 도서관 체질은 아니라 책상에 앉아 책을 읽지 않았다. 늦은 저녁 캠퍼스의 한적한 가로등 아래에서 책을 읽었다. 앉으면 졸리니 서서 읽었다. 새벽 세 시가 되면 캠퍼스는 소등을 했다. 그때가 되면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잠을 잘 차례였다. 많이 자봤자 하루에 다섯 시간 정도가 고작이었다. 더 읽다가 한 두 시간만 자고 학교에 가는 날도 있었다. 자기 위한 노력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느 무렵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어 늘 글을 썼다. 글과 사랑에 빠졌을 정도였다. 읽고 쓰는 게 하루 일과였다. 완성하고 싶은 소설을 위해 밤을 새기 일쑤였다. 모두가 잠든 시간 창작 활동을 하는 건 희열마저 느끼게 했다. 벌써부터 진짜 소설가가 된 것 같기도, 진짜 예술가가 된 것 같기도 했다. 첫 번째 책을 출판하게 되었을 때도, 두 번째 책을 출판하게 되었을 때도 그 과정에는 늘 밤샘 작업이 있었다. 잠은 사치였고, 장애물에 불과했다.


인터뷰를 하던 작가님에게 말했다. 나는 잠들기 위한 노력은 한 적은 없고 최대한 자지 않으려고 하다 정말 졸릴 때 잔다고. 잠이 쏟아져 내릴 때까지 무언가를 하다가 자는 것이었다. 몇 달 뒤, 작가님의 책 <<자고 싶다>>를 접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잠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를 담은 인터뷰 집이었다. 읽어보며 놀랐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잠이 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인터뷰마다 실린 삽화들을 보니 모두 침대에 자기 위해 누워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앉아서 글을 쓰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왜 그동안 자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자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적은 수도 없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치지 않던 이십대의 체력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삼십대의 나는 이제 잘 자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 몸소 깨닫고 있다. 내일을 위해 자야하는 걸 알지만 정신은 다른 템포를 기억하고 있다. 꿈이 있는데 잠이 오는 거야? 라며 스스로를 잠들지 못하게 한다. 불안한 마음에 그동안 하던 거를 한다. 읽고 쓴다. 제대로 진척이 되지 않는데도 스스로를 쥐어 짜낸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지쳐 잠에 든다.


행복한 잠, 달콤한 잠, 안락한 잠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리고 말았다. 잠의 효과는 알고 있다. 몸이 개운해지고, 마음이 가벼워지고, 정신이 맑아진다. 꿈이 있지만 이제는 무작정 잠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라도 잘 자려 한다. 새벽은 아름답지만, 내겐 내일이 있고, 의무와 책무도 있으니 말이다. 또 꿈을 위해서라도 잘 자야한다. 꿈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잠들 기 전 의식을 치른다. 파자마를 입고 명상을 하고, 스트레칭을 하고, 어둠 속에 눕는다.


하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는다. 그럴때면 고민이 든다. 이렇게 멍하니 누워있을 바에야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책을 읽고 글을 써야할까. 아니야 잠을 자야 힘찬 내일을 보낼 수 있으니 참고 자야해. 갈등속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세상으로부터 잘 자는 미덕을 배우지 못했을까. 왜 아무도 잘 자야한다는 걸 가르쳐주지 않았던 거지. 배우지 못했으니 이렇게 헤매는 건지도 몰랐다. 그래서 사람들이 수면제를 먹는 건가 싶었다. 잘 자는 법을 배울 수는 없는 것일까.


자고 싶다. 그것도 잘 자고 싶다. 그런데 그 방법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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