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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Jan 28. 2020

아버지의 안경

나는 아버지의 안경 벗기는 걸 싫어한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아버지의 안경을 벗기는 일이다. 저녁이 되면 소파에 누워 티브이를 보시다 잠에 빠져드는 아버지. 늘 안경을 쓰신 채로 곯아떨어지신다. 좋아하는 프로의 다시보기를 틀어놓곤 다 보지도 못한 채.


이제 나의 차례다. 아버지의 안경을 벗겨드리며 말한다. 들어가서 주무세요. 아버지는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냐며 놀라 눈을 뜨곤 그제야 편히 잠자리에 드신다.


이 순간이 내가 하루 중 가장 싫어하는 순간이다. 안경을 벗기는 수고 때문이 아니다. 방에서 나와 어둔 거실에서 마주하는 광경이 싫은 것이다. 예순셋. 하루 끝에 티브이 보는 낙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사내. 아쉬움에 놓지 못하는 리모컨. 얼굴에 남겨진 나이테와 한바탕 불태웠던 것처럼 흰 재만 남은 머리칼.


아버지는 아침이면 또 전성기처럼 하루를 보낼 테지. 하지만 나는 뻔한 저녁이 올 거라는 걸 안다. 가장 싫어하는 것을 마주할 거란 사실도. 어김없이 마주한다. 속절없이 사라져 가는 젊음과 강인함, 그 사이로 드러나는 늙음과 나약함을. 나는 그 계절의 변화가 슬프고, 그 계절 속에서 내가 자라고 있음을 알기에 한없이 스스로가 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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