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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May 05. 2020

평생직장 증후군

당신에게 직장은 어떤 의미 인가요?

얼마 전 아버지께서 팔 수술을 하셨다. 취미로 테이블을 만들다 사고가 났던 것이었다. 나무를 자르던 그라인더 날이 튀어 팔에 박힌 위험천만한 사고였다. 의사는 큰 사고였지만 동맥이 다치지 않아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장장 반나절 동안 두 번에 걸쳐 수술을 했다. 의사는 일 주 입원과 퇴원 후 두 달 동안의 충분한 휴식을 권고했다. 사업을 하시는 아버지는 사업장을 내게 맡겼다. 아들인 나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아버지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못 미더우신지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하며 상황 보고를 하게 했고, 이것저것을 지시했다. 나는 아버지가 미웠다. 나를 믿지 못하고 실시간으로 지시를 하는 아버지가 미운 게 아니라, 병상에서도 편히 쉬지 못하는 아버지의 책임감이 미웠던 것이다. 아버지 신경 좀 끄고 쉬세요. 다들 열심히 하고 있어요. 다 나아서 건강하게 오세요. 다 잘 돌아가고 있어요. 정말이었다. 아버지가 없어도 사업체는 잘 돌아갔다. 나도 두 배 세 배로 열심히 일했고 직원들도 의기투합하고 있었다.


두 달을 쉬라던 의사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채 보름도 안되어 출근을 하셨다. 나는 이러다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 않으면 어떡하실 거냐며, 다시 수술하실 거냐고 좀 푹 쉬라고 화까지 냈다. 하지만 아버지는 도저히 집에 있질 못하겠다고 말했다. 쉬는 게 쉬는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자체가 고역이라고 하셨다. 오히려 출근을 하는 게 마음이 편해서 좋다고 하셨다. 정말 그래 보였다. 침상에 누워있는 것보다, 집에서 하루 종일 계신 것보다 얼굴이 좋아 보였다.


하지만 쉬셔야만 했다. 그래야만 했던 이유들이 속속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깁스를 한 채 운전을 하시다가 주차장에서 접촉사고를 내셨다. 출근해 짐을 옮기시다가 실밥이 벌어졌다. 더운 날씨 속에 바삐 움직이다가 상처가 곪았다. 팔 때문에 균형 감각이 무뎌졌는지 넘어지기까지 했다. 나는 짜증을 냈다. "아버지, 좀 쉬세요!" 아버지도 내게 화를 냈다. 몸은 따라주질 않고, 실수만 계속되는 상황 자체에 화가 나신 것 같았다. 잠시 후 그 자리에 있던 거래처 직원이 나를 불렀다.


그는 벤치에 앉아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평생 농사만 짓고 사시던 그의 아버지는, 신도시 개발로 전답을 모두 처분하고 보상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보상을 받았음에도 정작 우울증에 걸리게 되었다. "아버지는 농사가 삶이나 마찬가지였던 거예요. 전답을 팔면서 삶 자체를 잃어버렸던 거죠. 아버지 세대는 우리랑 달라요. 평생 일만 하며 살아서 일 이외의 삶을 모르는 거죠. xx 씨 아버지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의 말이 맞았다. 나는 아버지에게 일이 주는 의미를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평생 동안 아버지는 새벽 4시면 잠자리에 일어나 출근을 했다. 그리고 직원들은 휴가를 줘도 정작 당신은 이렇다 할 휴가도 없이 지내왔다. 사업이 커지면서는 오히려 더했다. 더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했다. 당연히 일에 헌신했기에 취미도 모임도 없었다. 주말에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사업장으로 향하셨다. 차량들을 손보시고, 주변 화단에 나무를 손보시고, 사무실을 정리했다. 의사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출근을 하셨던 아버지는, 사실 출근을 하신 게 아니라 당신의 삶을 살고 싶으셨던 것이다.


아버지는 분명 옛 세대였다. 우리 젊은 세대에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없어졌다. "이 회사에 뼈를 묻겠습니다."라는 취업 단골 멘트도 저 머나먼 시절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우리 세대에게 트렌드는 '퇴사'이며 '이직'이다. 또한 퇴근 후의 삶을 중요하게 여긴다. 석식, 야근, 숙직이란 단어는 기피 대상이 되어버렸다. 나는 일이 삶의 동의어가 아닌 세대 속에 속해있었다. 일은 삶을 위한 동력일 뿐이다. 그러니 아버지가 이해가 되질 않았던 것이다. 과장을 보태 단정하자면 아버지는 직장 이외의 삶이 없었다.


얼마 전에는 누나로부터 비슷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정년퇴임을 한 누나의 지인 소식이었다. 그는 정년퇴임 후 근 이 년 간 심한 우울증과 실어증에 걸려 가족들과 이야기조차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분도 나의 아버지와, 거래처 직원의 아버지와 같은 경우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직장에 헌신했던 삶을 살아온 세대, 그들에게 직장은 얼른 퇴근하고 싶은 일터가 아닌 삶 그 자체였던 것이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인정을 받고, 일의 보람을 느끼고, 존재의 의미를 찾는 삶 그 자체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은 일과 여가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 그의 지론처럼 삶은 일원론적이어서는 안 된다. 일이 곧 삶일 때 인간은 크나큰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네 아버지들처럼 일을 접게 되었을 때 삶의 의미 자체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 이외의 삶은 무엇으로 이루어져야 할까? 인간관계일까, 취미활동일까, 예술적 취향일까, 여행일까, 우정일까, 사랑일까. 그것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무엇이 되었든 간에 일이 아니어도 삶을 지탱할 수 있는 단단한 주춧돌이어야 한다.


나의 삶에서 일을 빼본다. 과연 무엇이 남을까.  그것이 나의 삶을 얼마나 지탱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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