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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Aug 28. 2020

그래서 행복한가

잡을 수 없는 행복과, 잡을 수 있는 행복에 대하여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느새 나는 습관처럼 편의점의 진열대 사이를 맴돌고 있다. 습관처럼 든 장바구니를 군것질 거리로 채운다. 하리보와 감자칩 몇 봉지, 그리고 맥주 한 캔. 비닐봉지를 들고 도착한 현관 앞에는 큰 택배 박스가 놓여있다. 며칠 전에 구입한 고급 브랜드의 점퍼였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무거워진 두 손에 잠시 행복에 젖어든다.


하지만 소비를 통해 얻는 즉각적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하리보와 감자칩은 뜯지도 않은 채 찬장에 넣었고, 맥주는 몇 모금 마시지 않곤 컴퓨터 모니터 옆에 가만히 세워둔다. 멋진 점퍼는 무더위 끝에 찾아올 가을을 기약하며 장롱에 걸어두었다. 하리보와 점퍼와 함께 찾아온 행복과는 무관하게 여전히 나는 나였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즉각적인 행복은 유효기간이 짧았다.


언젠가 친구와 술을 마시며 행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과연 무엇이 진정한 행복이냐는 것이었다. 이렇게 함께 술이나 마시는 걸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혹은 진리를 깨닫는 걸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감으로 지각할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 중 무엇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하는 것일까. 이것은 일찍이 에리히 프롬이 그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를 통해 결론을 내린 문제였다.


그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보다 자신 스스로 온전히 존재하는 게 더 지고한 행복이라고 했다. 사실 세상을 불신하며 책을 신뢰했던 나는 그동안 그게 정답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그리하여 줄곳 자아실현 내지는 진정한 예술가의 길을 추구해왔다. 그게 지고한 행복을 위해 나아가는 길이라 여겼다. 하지만 자아실현이나 정신적 성취감이 주는 행복을 좀처럼 얻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가령 소설 집필이 그러했다. 몇 주, 몇 달, 길게는 몇 년을 스스로 고립되어 원고를 완성한다. 완성한 원고를 다시 창작에 투자한 시간과 노력 못지않게 퇴고를 한다. 그리고 원고를 출판의 프로세스를 거쳐 책으로 만든다. 완성된 책을 처음 손에 쥘 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머지않아 기쁜 순간도 찾아온다. 운명처럼 책을 통해 인연을 맺은 독자로부터 진심이 담긴 서신을 받을 때가 있다. 그 순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감동을 받는다. 그러한 것들은 정말 보석 같은 행복이다.


하지만 이러한 행복은 쏟아부은 헌신에 비해 조금은 가혹하다고 할 수 있다. 보상처럼 다가오는 행복의 감정은 애석하게도 투자한 시간과 노력에 비해 정말 짧은 순간에 지나가버리고 만다. 붙잡고 싶지만 금세 휘발해버린다. 사실 행복하고 싶어서, 행복의 보상을 바라며 창작활동을 하는 건 아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창작활동 그 자체에서 사유하고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고 싶어서, 또 그래야만 해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가를 택한 것이다. 하지만 창작 자체는 행복이랑은 거리가 있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건 존재 양식에 가깝기 때문이다. 때문에 하고 싶은 것에 헌신하며 열심히 살고 있었지만 솔직하게 그리 행복한 삶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무던하고 조금은 적막했다. 함께 술을 마시던 친구에게 물었다. “너는 만일 석가나 예수에 버금가는 진정한 자기실현과 벤츠 amg gt 43(이건 친구의 드림카이다)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면 뭘 선택할 거야?” “당연히 벤츠지!”


그는 벤츠가 행복이며 곧 자기실현이라고 했다. 곧 죽어도 벤츠라고 했다. 그리곤 같은 질문에 나도 답해보라고 했다. “끝판왕 벤츠면 마음이 흔들린다. 근데 나는 꼭 써야 하는 장편소설들이 있어서 진짜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전자를 택해야 할 것 같아.” 진심이었다. 나는 행여나 내게도 행운이 온다면, 오직 소설에만 쓰여야 한다고 생각하며 함부로 복권도 사지 않았다. 친구는 술잔을 비우더니 명언을 남겼다. “너도 손에 잡을 수 있는 걸 꿈꾸면서 살아. 행복은 오직 만질 수 있는 것들로부터 오는 거다.”


오늘도 나는 만질 수 없는 것들을 갈구한다. 그리하여 하루 종일 허공에 갈망의 손짓을 하던 나는 공허함에 지쳐 잡을 수 있는 것들을 잔뜩 손에 쥐어본다. 하리보, 감자칩, 맥주, 비싼 옷. 가장 쉽고 즉각적인 행복들이 다가온다. 행복은 잡을 수 있는 것들에서 온다니, 얼마나 현명한 친구인가. 근 십 년 간 읽은 책은 친구라는 의리 하나로 읽은 나의 저작 두 권이 전부인 친구가 어쩌면 나보다 현명한지도 몰랐다.


오늘도 나는 늦은 밤 책상 앞에 앉는다. 그리고 자문해본다. 그래서 행복한가.






instagram@leewoo.dem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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