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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Oct 23. 2020

카프리를 꿈꾸지만

멋지고 완벽한 작업 공간을 꿈꾸는 젊은 작가의 소망에 대하여

이따금씩 멋진 작업실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세련된 인테리어에, 창밖으로는 강이나 바다를 마주하고, 영감이 절로 떠오를만한 마호가니 책상에, 잘 짜여진 책장도 있고, 최신형의 아이맥도 놓여있고, 무엇보다 그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는 온전한 나만의 공간을 말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쾌적한 환경은 작가에게 독이라는 걸 알고 있다. 위대한 개츠비로 큰 성공을 거둔 스콧 피츠 제럴드는 이후 자신의 작업실을 뉴욕의 허름한 집에서 이탈리아 카프리로 옮겼다. 아름다운 지중해를 마주한 멋진 거주지에서 집필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뒤로 데뷔작을 넘지 못한 채 작가로서도, 한 개인으로서도 몰락의 길을 걷고 만다.

작가에게 가장 좋은 집필 환경은 사실 조금 불편하고 조금 부족해야 한다. 가령 마르셀 프루스트는 자신의 방을 빛도 들지 않게 밀폐시켜 그곳에서 집필을 했고,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자신의 오래된 차 뒷좌석에 불편하게 앉아 집필을 했으며,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원에서 퇴고를 했다.



작업하러 자주 갔던 파리의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에서. 2016



그렇다면 나는 지금껏 어떻게 집필을 했을까. 첫 번째 책 레지스탕스는 배낭여행자로서 집필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어느 도시의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미술관 한 구석에서, 허름한 숙소의 침대에서, 기차역에서, 공항의 벤치에 앉아 자판을 두드렸다. 두 번째 책 자기만의 모험은 집 베란다의 빨래 거치대 옆 앉은뱅이 책상에서 삼 주 동안 진득하게 앉아 초고를 써냈다. 세 번째 책 경계에서는 시집이다. 이 책은 레지스탕스처럼 배낭 여행을 하며 주머니에 늘 갖고 다녔던 수첩에 기록한 시들을 한데 엮은 것이다. 위클리우로 진행하는 단편소설들 역시 비슷한 과정 속에서 만들어졌다.

피츠 제럴드처럼 카프리를 꿈꿔보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그대로이기를 바라본다. 언제 어디든 집필하기 위해 늘 들고 다니는 노트북이 담긴 무거운 가방도, 저녁이면 어김없이 찾아가는 카페도,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맴도는 내 방의 오래된 책상도, 가끔씩 찾아가 빌려 쓰는 허름한 호텔의 작은 책상도. 카프리가 아니라 그저 작업 환경들이 아주 조금씩 개선되기를. 그래서 부족함에서 오는 젊은 열정이 식지 않기를 바라본다.




instagram@leewoo.dem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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