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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Oct 27. 2020

그날이 너무 늦지 않기를

젊은 소설가의 작은 소망에 대하여

대학교 시절, 일면식도 없는 국문과 교수의 연구실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무슨 영문인지 묻는 교수에게 원고를 내밀며 당돌하게 말했다. “교수님께서 문학평론가라고 들었어요. 저는 소설가가 되고 싶어요. 제가 앞으로 소설을 계속 써도 될지 판단해주세요. 이게 그저 문학적 치기인지, 재능인지 알려주셨으면 해요.”


교수님은 나를 앞에 두고 천천히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원고는 길었다. 침묵의 시간을 견딜 수 없어 입술을 깨물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원고를 다 읽은 교수님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작가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에요. 오직 자신만이 아는 일이지요. 계속해보는 건 어때요?”


사실 재능이 있다는 대답을 원했다. 미래가 촉망되는 인재를 발견해 기뻐하는 교수님을 보고 싶었다. 어깨를 으쓱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차분하게 계속해보라고만 했다. 그 아리송한 말을 희망회로의 동력으로 썼다. 정말 계속했다. 읽고 또 읽고 쓰고 또 썼다. 그 뒤로 나는 교내 문학상 소설 부문에서 국문과 친구들을 제치고 삼 년 동안 대상을 수상을 했다. 심사위원은 바로 그 교수님이었다.


매번 섭섭했다. 그는 축하한다고도 하지 않고 계속해보라고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수님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조악한 원고를 읽고도 계속해보라고 한 그 아량과 인내에 고개를 숙이고 싶다. 나는 계속해보라는 그 아리송한 말 때문에 대학시절을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많은 저작들을 읽고 습작을 집필하며 자양분을 쌓을 수 있었다. 그 시절만큼 문학에 뜨겁게 헌신했던 적이 없으며 그렇게 다시 하라고 해도 할 엄두가 나질 않는다.


내겐 작은 소망이 있다. 그때처럼 교수 연구실을 찾아가 문을 두드리는 것. 교수님에게 다시 한번 자신만만하게 두꺼운 원고를 내미는 것. 그리고 소설과 함께 실을 작품의 평론을 부탁하는 것. 사실 나의 첫 장편소설 레지스탕스에는 그래서 그 어떤 평론이 없다. 첫날의 만남처럼 아직은 아니라는 걸 스스로 알기에. 차라리 싣지 못한다면 싣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제는 뜨거운 여름 같았던 그날의 치기도 서늘하게 식었다. 대신 이성은 냉철해졌다. 교수님에게 찾아가 구태여 묻지 않아도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아무도 모른다. 계속해야 한다. 하지만 과연 나는 언제 알 수 있을까. 내가 두려운 것은 그것이다. 진짜 소설가가 될 수 있을까. 늦은 새벽, 오늘도 잠들지 못한 채 책상 앞에 앉는다. 다시 한번 연구실의 문을 두드릴 그 날이 너무 늦지 않기를 고대해보며.




instagram@leewoo.dem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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