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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Mar 28. 2020

윤슬, 연가시

잡을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하여

멍하니 핸들을 잡은 채 자유로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 언제나 그렇듯 자유로에 자유는 없었다. 되려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점점 교통체증이 심해질 뿐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차창을 내렸다. 일렁이는 한강은 오후 네 시, 아직은 미약한 봄날의 햇살을 산산이 깨뜨리고 있었다. 찬란하게 부서지는 이 햇살을 세상은 윤슬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입으로 직접 불러보니 더 예쁘게만 보였다. 마치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어느 여인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 같았다.


참을 수 없는 충동이 일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네비게이션의 경로에서 벗어나고 있었고, 물비린내를 향해 킁킁 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지난 겨울의 흔적이 역력한 갈대를 헤치며 본능적으로 나아갔다. 어느새 윤슬을 잔뜩 머금은 한강의 물결은 신발 끝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곳까지 나를 이끈 충동은 정말 연가시 같은 놈이구나. 또 나를 막다른 곳까지 이끌었구나.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그의 충실한 심복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연가시 같은 그 놈을 여러 이름으로 부르곤 했다. 영감,  본능, 이끌림. 나의 오관과 직관을 지배하는 이 녀석은 늘 아름다운 것을 갈망하게 했다. 그의 부름을 따라 찬란한 윤슬을, 달콤한 물비린내를 쫓으며 살았다. 그리하여 나는 젊은 날 에게해의 투명한 파도와, 대서양의 부서지는 포말과, 비스케의 만의 모래사장과, 사하라 사막의 신기루를 서성였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 아름다운 것을 소유하지 못했다. 잠시 곁을 맴돌았을 뿐. 윤슬은 닿을 수 없는 수면 위에서 마치 신기루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충동과 욕망으로 똘똘뭉친 이 녀석은 마치 연가시처럼 나를 물가까지 이끌고 오면 솟아나오려고 발악을 했다. 하지만 나는 허약한 사마귀처럼 저 멀리 나아가고자하는 녀석을 놓아준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욕된 육신과 나약한 마음으로 그를 단단하게 붙잡았다. 그렇다면 내가 소유하고 싶었던 것은 찬란한 윤슬이었을까, 생동력으로 가득 차 움틀거리는 연가시였을까. 나는 늘 녀석을 택했다. 찬란한 윤슬은 단 한 번도 내것인적이 없었으니, 그것에게로 안내하는 녀석이라도 붙잡고 늘어지고 싶었던 것이다.


저 먼 훗날, 몸과 마음이 쇠하여 더 이상 녀석을 붙잡을 수 없을 때가 올 것이다. 그때도 녀석은 나를 물가로 끌고 갈 것이다. 때를 기다린 녀석은 쉬이 솟아나올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녀석을 잡지 않을 것이다. 녀석은 이내 후회할 것이란 걸 알기에. 오관도 직관도 없는 눈 먼 녀석은 절망에 빠지고 말 것이다. 녀석은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만 해주었지, 그것을 인지한 것은 결국 나였다. 아름다움이란 것을 오직 숙주를 통해서만 지각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후회의 날을 만들지 말자. 잡을 수 없는 윤슬을 마주하기 위해 달리던 경로를 벗어나고, 윤슬이 흩뿌려지는 오후 네 시를 기다리며, 먼 길을 돌아 그녀를 바래다주고, 그녀를 하염없이 기다리자. 일 년에 단 한 번만 필 꽃을 갈망하자. 우리는 소유하는 방법을 모르니 아름다움의 곁에서 그저 맴돌기만 하자. 그리하여 우리는 해가 저물어 윤슬이 사라진 시간을 어떻게 견디는지에 대해서만 골몰하도록 하자. 혹시 모른다. 결핍의 나날 끝에, 서성이던 이 해안만은 오래도록 온전한 우리의 소유로, 영역으로 남을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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