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덴으로부터의 추방」
「에덴으로부터의 추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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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우의 세 번째 소설이다. 이 단편소설은 인간의 성충동과 성에 대한 인식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회적 성윤리와 한 개인의 성 인식은 어떻게 형성되어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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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구상하게 된 것은 n번방 사건 때문이었다. 이 사건은 하나의 단편적인 사건이라기 보다 시대의 현상으로 느껴졌다. 수십 만의 사람들이 이 범죄에 직접적-간접적-심정적으로 가담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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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번 브런치에 연재한 에세이에서 유교-기독교적인 엄격한 성윤리와 성에 대해 터부시하는 풍조가 이러한 왜곡된 성인식을 낳은 거라고 썼다. 시대는 성에 대해 너무 무겁게, 또는 너무 가볍게만 이야기를 했다. 성에 대해 일상의 언어로 이야기 하지를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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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인간의 성 충동을 ‘리비도’라고 일컬으며 ‘에고(자아)’형성의 원동력으로 보았다. 세상의 성윤리인 ‘슈퍼 에고’는 엄격한 잣대로 리비도를 억압하는데, 이때 리비도가 제대로 발현되지 못 하면 자아는 위축되고 왜곡되어 형성된다고 한다. 심한 경우 정신질환까지 발현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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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자아의 깊은 상관관계는 비단 심리학의 관점만이 아니다. 철학자 버틀런드 러셀은 자신의 에세이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서 같은 논지를 펼친다. 그는 기독교는 인간에게 성충동을 ‘원죄의식’으로 인식시킴으로써 인간의 이성을 죄의식으로 옥죄었으며, 그 결과 인간은 사상적으로 억눌린 ‘신앙의 노예’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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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성윤리는 여전히 엄격하다. 유교 사상에 기독교 사상까지 더해져 윤리적 잣대가 아주 예리하다. 하지만 이에 반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성에 대한 담론은 굉장히 생리적이고 피상적인 성교육이 고작이다. 우리 사회에서 성에 대한 인식은 사실 또래들과 함께 알아서 형성한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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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인에게 좋은 성 인식이란 극심한 원죄의식에 옭아매는 것도 아니고, 문란의 영역으로 이끄는 것도 아니다. 그저 세상의 성 윤리와 궤를 같이하는 아주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충동으로 인식하게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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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설 ‘에덴에서의 추방’에서는 극중 인물을 성 인식의 양 극단—아주 엄격하고 또 아주 가벼운 성 인식—에서 맴돌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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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성인이 된 주인공 현석은 성을 그저 악으로만 취급하는 아주 보수적인 유교-기독교적인 집안에서 자라왔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성에 대한 호기심과 성충동에 딱 그에 상충되는 만큼의 죄의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성충동을 아주 가벼운 유희로만 생각하는 친구를 만나 자신의 성충동이 이끄는 대로 성의 새로운 극단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알게 된 유희로서의 성과, 너무나 무거운 원죄의식 사이에서 극심한 심리적 갈등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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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통해 인간은 어떻게 리비도를 긍정하고, 슈퍼 에고와 자신의 에고를 조율하고, 또 어떻게 스스로의 자아를 형성해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이 시대에 던져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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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에덴으로부터의 추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