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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Jan 09. 2021

그래도 그때의 나는 몽골에 가고 싶었다

사랑과 맞바꾼 몽골 여행에 대하여

몽골의 어느 들판에서



나는 사랑 앞에서 겁을 먹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이렇게 물었다. “만일 사랑하는 사람이 아주 오랫동안 먼 곳으로 홀로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허락해줄 수 있어?” 잠시 생각에 잠긴 그녀는 입을 열었다. 원래 혼자만의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녀의 대답을 듣고서야 안심이 되었다. 사랑에 대한 두려움은 고작 그것뿐이었다. 홀로 떠돌았던 스물여섯 개의 낯선 나라. 그 기나긴 여정은 나의 영혼의 고향과도 마찬가지였다. 어언 십 년 동안 계속해 온 방황을 멈추어야 할 것 같아 두려웠다.


내게 방황은 가능성의 세계였다. 낯선 세상을 마주하고, 낯선 공기를 호흡하고, 낯선 사람을 만나고, 낯선 가치관을 마주하면 전혀 알지 못했던 나를 발견하곤 했다. 그네들의 법칙 속에 몸을 던지면 점점 새로운 나 자신이 되어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마치 분갈이를 한 작은 화초가 된 것처럼 새로운 대지에서 새로운 자양분을 흡수했다. 나는 방황 속에서 자라났다. 방황을 계속하고 싶었다. 세상 속에서 나만의 아름다운 가치관을 만들어가고 싶었다. 세상의 모든 지상의 양식을 흡수하며 이 세상 가장 유연한 인간이 되어보고 싶었다.


이러한 육체적 방황의 욕망은 문학적인 곳에서 발현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초인이 되기에 제약이 너무 많았다. 인간적 한계에서 어떻게 인간을 초월할  수 있단 말인가. 니체 역시 초인에 대한 방향성만 제시했을 뿐 스스로는 미치광이가 되어 삶을 마감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초인이 되고 싶었다. 나는 울타리에 갇혀 있었지만 무언가는 울타리를 너머 아름다운 비상을 해야만 했다. 어느덧 나는 이 세상에서 만나보지 못했던, 내가 되고 싶은 이상적인 인물들을 소설 속에서 창조해내고 있었다. 방황으로 점철된 나의 20대는, 사실 문학적 자양분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녀는 나의 방황의 이력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몽골에 가보고 싶어.” 나는 그녀와 함께 가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와 많은 곳을 여행했지만 몽골만큼은 혼자 가보고 싶다고 했다. 꼭 몽골이어야만 했다. 그것은 굉장히 추상적인 갈망이었다. 몽골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 그저 막연하게 떠오르는 것은 광활한 초원과 그곳에서 거칠게 살아가는 유목민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거칠게 먹고 마시고 호흡하며 살아보고 싶었다. 그곳에서 뿌리를 깊게 내리고 몽골의 정수를 흡수하고 싶었다. 내게는 없던 야수성을 시추하고 싶었다.


그녀의 향기에 취해 함께 누워있던 어느 밤에도 나는 몽골 생각을 했다. “몽골에 가보고 싶어.” 바보 같이 사랑한다는 말 대신 몽골 이야기를 했다. 사랑한다는 말은 아꼈지만, 몽골에 가고 싶다는 말은 아끼지 않았다. 사실 사랑은 달콤했다. 하지만 사랑이 주는 몽롱한 도취의 감정이 무서웠다. 그녀가 나의 방황에 마침표를 찍어줄 것만 같았다. 무언가가 되지도 못한 채 세상을 피해 그녀의 포근한 품 속에 숨어 있을까 두려웠다. 그녀에게 의지하는 겁쟁이가 되기 싫었다. 그렇다면 사랑은 방황의 장애물인 것인가.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사랑 앞에서 방황은 보잘것없다는 것을.


어느덧 이별이 찾아왔고 나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몽골로 떠났다. 가장 인적이 드문 광활한 자연 속에 몸을 던져보고 싶었다. 몽골에 도착한 나는 버스를 타고, 택시를 타고 몇 날 며칠을 달렸다. 도착한 곳은 홉스골 호수의 최북단. 소박한 침대가 고작인 작은 게르를 빌려 여정을 풀었다. 이제 나도 유목민처럼 살아보리라! 말을 타고 초원을 달렸다. 모닥불 앞에서 책을 읽었다. 차가운 호수에서 헤엄을 쳤다. 호수를 바라보며 소설을 집필했다. 나무 그늘에 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태양 아래 낮잠을 잤다. 열심히 초원의 야수성을 시추했다.


하지만 외로웠다. 텅 빈 게르에서 잠이 들 때면 적막에 짓눌렸다.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장작 소리는 불길 속에서 마음이 갈라지는 소리 같았다. 이대로 타버려 바스러질 것 같았다. 고요한 추락 속에서 몇 번이나 되뇌었다. 만일 그녀를 택했더라면. 몽골에 가고 싶다는 말 대신 사랑한다고 했더라면. 그래도 몽골은 추락하는 내게 손 내밀어주었다. 낯선 몽골 사람들은 기꺼이 친구가 되어주었다. 덕분에 나는 추락하지 않고 초원을 뛰어다닐 수 있었다. 그들과 함께 말을 탔고, 노래를 불렀으며, 술잔을 기울였고 또 사랑과 우정을 나누었다. 몽골을 아름답게 만들어준 건 그들이었다.


사실 몽골은 공허했다. 눈부신 몽골의 자연도 아름답지 않았다. 아름다운 것은 내게 웃어주는 낯선 친구였다. 그리고 더 아름다웠던 것은 그녀였다. 떠나간 그녀는 몽골에서 더욱더 아름답게 빛이 났다. 어째서 나는 그녀를 닿을 수 없는 별로 만들었던 것일까. 애석하게도 나는 별빛 아래서도 시추를 했다. 덕분에 나는 오늘도 몽골의 야수성을 느낀다. 사랑과 등가교환한 야수성을. 야수성! 이것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자양분이란 말인가. 이 자양분은 집필 중인 소설 속 주인공이 몽땅 흡수하고 있다. 몽골의 정수는 그의 차지이다. 나는 채굴꾼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도 그때의 나는 사랑을 포기하면서도 몽골에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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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AXR77iLkU9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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