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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May 03. 2021

광야에서

소설『레지스탕스』3쇄에 부치는 글 #2

사실 나의 첫 장편소설 『레지스탕스』의 1쇄에는 작가의 말이 없었다. 그런데 3쇄 발간을 맞이해 두 편의 작가의 말을 실었다.「레지스탕스를 떠나보내며」와 「광야에서」가 바로 그것이다. 작가의 말을 통해 '레지스탕스'의 본질과 근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지금 읽어보면 치기가 여실히 느껴지지만 그만큼 진지함이 담겨있는 증거라고 볼 수 있겠다. 아직 레지스탕스를 읽지 않은 독자분들에게도 이 작품이 어떤 소설인지 어렴풋이 다가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 두 번째 작가의 말




광야에서


세례 받지 못한 소설. 나는 이 년 전 레지스탕스를 이렇게 정의했다. 소설가로서의 왕도로 여겨지는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지도 못했고, 소설책에는 으레 주석으로 붙게 마련인 평론가의 찬사도 싣지 못했던 까닭이었다. 그럼에도 소설을 세상에 띄워보내고 싶었다. 무엇이 출판을 그토록 종용했던 것일까. 완성된 소설을 한 권의 책으로 만져보고 싶었던 욕망이 첫 번째였고, 왕도가 아니어도 한국 문단에 족적을 남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반항심과 오기가 두 번째였다. 그리고 서둘러 소설가가 되고 싶은 조바심이 세 번째였다.


사실 소설가이신 고모는 출판을 극구 만류했다. 레지스탕스를 읽어본 고모는 내가 상처받지 않도록 레지스탕스가 조악한 소설이라는 것을 에둘러 알려주었다. 번역투의 고루한 문장에 젖어있고, 이 시대의 정서와 괴리되어 있으며, 세상에 전혀 호소력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구태여 읽어 줄 사람도 없을 거라고 했다. 그냥 소설 자체를 철회하고 다시 시작하라고 했다. 고모로부터 훌륭한 소설이다, 세상에 없던 멋진 소설이다, 라는 찬사를 기대했던 나는 충격을 받고 말았다. 원고에 피드백을 준 유일한 문학가의 답변이 고작 부정이었을 뿐이었다.


내가 만약 조카가 아니었다면 뭐 그럭저럭 괜찮은 소설이라며 좋은 말만 해주었을지도 몰랐다. 애정이 있기에 쓰디쓴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시련을 당한 것처럼 마음이 너무 아팠다. 숨을 쉬기가 힘들었고, 감정을 추스리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고모의 조언을 인정하기로 했다. 다만 레지스탕스를 없었던 걸로 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말만 빼고는. 완벽하게 탈고했다고 자부했던 원고를 뜯어고치기 위해 어언 두 달 동안 밤을 지새웠다. 귓가에 맴도는 고모의 비평을 들으며 깎아내고 잘라내고 다듬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그렇게 지금의 레지스탕스가 다시 탄생했다.


사실 고모가 경고했던 것처럼 훗날 나의 문학적 행보를 가로막을 졸작으로 판명이 날까 두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출판을 했다. 앞선 세 가지 이유에서였다. 스스로 붙인 세례 받지 못한 소설이란 수식어는 그런대로 레지스탕스의 메시지와 제법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부도 있었다. 오직 세례자들만이 공존하는 한국문학에 이단자가 되어 저항해보는 것이다. 하지만 의지가 어찌되었든 세상에 나아간 레지스탕스는 더 이상 나의 소관이 아니었다. 졸작인지, 3류 소설인지, 그런대로의 의미가 있는 소설인지는 세상이 정해줄 터였다.


세례 따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은 비단 작품만이 아니었다. 작가로서의 자의식도 마찬가지였다. 문단의 품에 안기지 못한 이단자인 ‘이우’는 여전히 광야를 헤매고 있다. 저 너머의 아름다운 세계, 문단의 소식을 종종 듣곤 했다. 새로운 신자에게 세례를 주는 동시에 자신들의 품으로 받아주었다는 이야기. 서로를 찬사하는 아름다운 미담. 사실 알고 있었다. 이 광야에 내게 세례를 해 줄 세례자 요한은 없다는 것을. 그래서 광야를 떠돌면서도 숱한 소설을 썼고 그들에게 보냈다. 답장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세례의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편지를 띄우고 있다. 


그래도 행운이었다. 광야를 떠도는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정착지도 없이 떠도는 내게 하나둘 편지가 도착했다. 고등학생부터 대학생, 동년배, 그리고 중년과 노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받은 장문의 편지였다. 모두 레지스탕스의 독자였고, 편지에는 작품에 대한 견해가 담겨 있었다. 자신을 길게 고백하는 이들도, 소설에 대한 평론과 나름의 분석을 하는 이들도, 아름답다고 찬사를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세례를 받은’ 문학계의 한 젊은 작가로부터도 서신이 왔다. 그는 레지스탕스가 ‘자신들의 세계’에서 본 적 없는 신선한 작품이라며 응원해주었다.


광야를 홀로 떠돌며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소설이란 무엇인지, 내가 쓴 소설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앞으로는 무얼 써야하는지에 대해 자문자답할 수 있었다. 광야의 책, 레지스탕스의 3쇄를 맞아 욕심이 생겼다. 나의 문학적 출발점을 보다 온전하게, 보다 아름답게 손보고 싶었다. 3쇄를 기념해 저자로서 북커버 디자인을 도맡았다. 초판에 싣지 않았던 작가의 말도 실었다. 더불어 감사의 말도 덧붙이고자 한다. 그대들의 경청이야말로 광야를 홀로 떠도는 내게 구원의 손길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어쩌면 그대들이야말로 내게 세레자 요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2020년 광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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