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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Jul 03. 2021

단편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시집을 세상에 떠나보내며 하고 싶었던 이야기


시집 <<경계에서>>를 발간하며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꼭 하고 싶었지만, 그 누군가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그건 부모님이었을까, 친구였을까, 연인이었을까, 독자였을까. 나는 당시 절박했던 심정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지만 그 누군가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다. 과연 나의 내밀한 고백을 누가 들어줄 수 있을까. 그래도 나는 고백을 했다. 내가 가장 잘 하는 방식인 글을 통해서 말이다. 어느 누군가가 귀 기울여줄 것이라 기대하며.


이번에는 글을 통해, 글을 초월한 메시지를 전해보고 싶었다. 그것은 영상이었다. 언젠가 보았던 단편영화가 늘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단편영화처럼 나름의 내러티브를 담아 메시지를 전해보고 싶었다. 글을 영상으로 만들어보자고 기획만 했지만,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다. 콘티도 만들어봤지만, 영상은 너무 추상적인 작업처럼 느껴졌기에 좀처럼 구체화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간간히 유튜브를 하며 영상 편집에 노하우가 생겼고, 촬영과 편집의 가능 영역을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영상 제작의 기획으로부터 6개월, 틈틈이 촬영한 영상을 편집하고, 집필한 글을 녹음해 드디어 영상 에세이를 만들었다. 명확한 메시지와 나름의 내러티브를 담고 있기에 이것을 '단편영화'라 부르고 싶다. 나의 고백을 세상에 띄워 보낸다. 누군가가 귀 기울여주길 기대하며. 그 누군가가 당신이기를 기대하며.


https://youtu.be/PxUTVtIjeiY


경계에서 ; 어느 소설가의 고백, 혹은 세상에 시집을 떠나보내며 하고 싶었던 이야기


내가 시를 쓰게 된 건 원초적인 욕망이었던 것 같아. 특별히 시를 좋아한다거나, 시학을 공부했던 것도 아니었거든. 게다가 되고 싶었던 건 소설가이지 시인은 아니었어. 시는 그저 절박한 필요에 의해 택했던 하나의 수단 같은 거였어. 왜, 우리는 가끔 절경을 마주하거나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잖아? 그것처럼 나는 순간을 포착하고 싶었어. 사진으로도 담을 수 없는 순간을 말야.


카메라 셔터 대신 펜을 들고 시를 쓴 거지. 모르겠네. 만약에 내가 그림을 그릴 줄 알았다면, 그 순간에 추상화를 그렸을 것 같아. 왜냐하면 나는 시랑 추상화는 본질은 같지만 형태만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하거든. 하지만 나는 붓이 아닌 펜이랑 더 친했고, 언어가 색 보다 친근했어. 그래서 시를 택했던 거지.


내가 시를 썼던 곳은 경계라는 곳이었어. 그래서 시집의 제목도 경계에서였던 거야. 나는 기회가 되면 늘 홀로 여행을 떠났어. 세상의 끝까지 가보고 싶었거든. 넌 세상의 끝이 어딘 줄 알아? 그런 곳은 없어. 지구는 둥글잖아. 그저 나는 물리적인 장소가 아닌 형이상학적인 장소로서의 세상의 끝을 찾고 가보고 싶었어. 그곳이 어딘지 궁금하지 않아? 내게 세상의 끝이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곳’이었어.


비행기를 타고, 열차를 타고, 페리를 타고, 버스를 타고, 택시를 타고, 오토바이를 타고, 때로는 낙타의 등에 올라타, 말을 타고, 또 하염없이 걸어 도착하는 바로 그곳. 그곳이 내겐 세상의 끝이었어. 사하라 사막의 베르베르인 캠프, 낙소스 섬의 아폴론 해안,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이란의 페르세폴리스 유적, 라바트의 아가디르 절벽. 몇 날 며칠을 걸려 도착한 이곳은 내게 세상의 끝이나 마찬가지였어. 그곳에서는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었거든. 이제 유일한 길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길 뿐이었어.


돌아가는 그 길은 어디로 이어져있었느냐고? 그곳은 바로 나의 근원이었어. 나의 고향, 나의 출신, 나의 가족, 나의 지식, 나의 한계, 나의 상처, 나의 부끄러움들 말야. 나는 늘 그것들로부터 초월한 전혀 새로운 인간이 되어보고 싶었어. 그래서 늘 세상의 끝까지 가보려고 했던 거야. 세상에 끝에 가면 나는 막막함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지. 더 나아가고 싶지만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으니까. 세상의 끝은 그래서 내게 경계나 다름없었어. 저 앞에는 나아갈 수 없는 이상향이 꿈의 왕국처럼 일렁거리는 거지. 그리고 등 뒤에는 나의 근원이 노을처럼 빛나고 있는 거야.


나는 경계에서 되도록 오래 머물고 싶었어. 이상향으로 나아갈 수 없지만 되돌아가긴 싫었거든. 그저 이상향을 되도록 오래 마주하고 싶었어. 경계에는 오직 나밖에 없었어. 따스한 것들은 저 등 뒤에 있었고, 지고한 것들은 저 멀리에 있었지. 아무도 없는 텅 빈 대지가 바로 경계였어. 그곳은 사랑과 고독의, 희망과 절망의, 신앙과 불신의, 그리고 이상과 현실의 경계였지. 모든 도덕과 가치판단이 유보된 곳이라 모든 것이 가능한 공간이었어. 가능성의 대지, 모든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세계란 뜻이었지.


나는 창조자가 되어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세계를 건설했어. 그것이 바로 나의 소설들이야. 그 시도들 그 자체를 그림이 바로 나의 시집 경계에서인 거고. 나의 시는 바로 가능성의 대지 경계를 그린 그림이나 마찬가지거든. 그래서 이 시집은 일종의 지리서라고도 할 수 있어. 외딴섬과 다름없는 나의 대지를 고스란히 포착하고 있으니까. 이 섬은 내가 인식하고, 지각하고, 사유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 감정의 섬이야. 메타포로 가득하지. 이곳에서는 내가 황제고 법이고 질서야. 나의 제국이지.


하지만 나는 혼자였어. 그래서 시집을 출판했던 거야. 이 지리서를 가이드북 삼아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었거든. 더 이상 혼자이기는 싫었어. 나는 이곳이 아무리 멋지고 완벽한 제국이라 하더라도, 초라하고 불안전한 사람과 사랑이 훨씬 더 아름답다는 걸 깨달았거든. 그래서 나는 이 외딴섬을 개항했고 사람들을 초대한 거야. 나의 처절한 시도로 가득한 이 섬이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운 유적지로 기억될 수 있을까.


이제 나는 고향과도 다름없는 이 섬을 떠날 거야. 이제는 이상향이 아닌 다른 걸 찾고 싶거든. 그게 무엇이냐고? 그건 사람과 사랑이야. 이상을 찾아 떠난 결과 나는 경계라는 섬을 만들었는데, 이번 여정은 어떤 섬을 만들 게 될까. 나는 방금 머릿속에 그런 섬을 떠올려봤어. 사랑과 온기와 웃음으로 가득 찬 그런 섬. 그래서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섬. 과연 유목민은 정착민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그래도 나는 늘 고향을 생각할 거야. 인간의 출신은 바꿀 수 없는 법이잖아. 앞으로의 여정에서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받을 수도 있겠지. 너는 어디에서 왔어?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거야.


나는 경계에서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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