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우 Jul 28. 2021

일상 언어의 결핍과 문학적 경이

나는 어떻게 문학도가 되었는가

내 삶에 문학만큼 강렬한 경이를 가져다준 건 없었다. 마주하는 문학 작품 하나하나가 주는 경이는 그야말로 가슴이 벅차고 정신이 아득할 지경이었다. 읽는 책이 늘어날 수록 내 곁에 노트는 켜켜이 쌓여갔다. 그곳은 인용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 날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나는 문학이라는 신흥 종교에 빠진 게 아닐까. 인용문으로 가득 찬 노트는 경전이나 다름 없었다. 이따금씩 의문을 갖곤 한다. 나는 왜 삶에서 문학만큼의 경이를 마주한 적이 없었던가.


가만히 인과관계를 따져보면 그건 내가 일상의 언어에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부터 집에 홀로 남겨진 시간이 많았다. 가족들과 함께 있어도 대화가 그리 없었다. 모두 자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꼭두새벽부터 일을 시작했기에 저녁을 드신 후에는 곧바로 주무셨다. 어머니는 새벽 장사를 하셨기에 저녁에 출근했고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퇴근해 아침밥을 챙겨주고 계셨다. 우리의 대화는 내밀하지 못했고 형식적일 뿐이었다. 대화는 있었지만 집은 내게 침묵의 세계였다.


때문에 사춘기 시절 가족과 이렇다 할 깊은 대화를 해 본 기억이 없다. 의견을 나누지 않고 각자 내린 결론만 전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그 시절 갖고 있던 괜한 반항심은 그들과의 소통의 단절을 은밀하게 선언했다. 집에서 언어를 사용할 일이 없었다. 일상 언어의 결핍을 다양한 것들로 채우려고도 시도해봤다. 우정, 사랑, 피아노와 바이올린, 컴퓨터 게임, 비행과 일탈. 모두 달콤한 것들이었지만 그 어느 것도 내게 문학만큼의 경이를 안겨다 주지는 못 했다.


그것은 내가 내면의 언어가 결핍되어 있었던 까닭이기도 했지만, 내게 문학이 자리잡고 있는 위치 때문이기도 했다. 문학은 전혀 낯선 영역의 신문물이나 다름없었다. 어려서부터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권장도서 100권” 따위의 가이드라인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았다. 시험지 위에 손바닥만한 사각 프레임에 잘려 실린 문학 지문은, 문학 세계에 대한 기대감 조차 갖지 않게 오히려 알러지 반응을 만들었다. 하지만 알러지는 문학이 아닌 시험지에 있었다.


이렇게 파편이 아닌 순수 온전한 문학은 신비의 영역으로 남겨져 있었다. 내가 처음 문학작품을 접했던 것은 스무 살 무렵이었다. 그때부터 그야말로 경이의 축제가 시작되었다. 호메로스,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단테, 밀턴, 괴테, 니체, 헤세, 토마스 만, 빅토르 위고, 제임스 조이스, 찰스 디킨스, 카잔차키스, 오르한 파묵, 서머싯 몸, 카뮈, 잭 캐루악, 켄 키지, 핏츠 제럴드, 도스토예프스키, 맬빌. 나는 그들을 나의 정신적 조상이라 여겼고, 그들의 무덤을 찾아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만일 아버지나 어머니가 문학 애호가였다면, 내가 문학에 경도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 같다. 어렸을 적부터 그들이 내게 문학을 이야기해주었다면 문학은 단순한 지적 교양으로 정도로 자리 잡아 내게 그 어떤 경이도, 감흥도 주지 못 했을 것이다. 부모님이 준 헤아릴 수 없는 대화의 결핍과 문학에 대한 무관심 덕분에 내게 문학은 16세기의 사람들이 마주한 지동설과 다름없었다. 문학과의 조우는 내게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제는 문학에서 이전만큼의 경이를 느끼지 못한다. 괴테, 니체, 헤세, 빅토르 위고, 카뮈, 마르셀 프루스트의 무덤에 찾아가 헌화하고 굳은 다짐을 하고 묵념하던 그런 치기어린 문학적 경이의 시간은 앞으로 다신 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나의 일상 언어의 결핍이 이미 문학으로 어느 정도 채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은 내게 일상의 언어가 되었다. 이제 나는 경이 속에서 익힌 언어를 쓰며 살아가고 있다. 그것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종이 위에 꾹꾹 눌러쓰며 말이다.






https://www.instagram.com/leewoo.demian/


매거진의 이전글 단편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