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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Oct 21. 2021

당신의 가을은 안녕하신가요?

가을밤,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

가을밤을 맞아 독자분들에게 편지를 남겨봤어요. 사실 몇 독자분들께는 별도로 이메일을 통해 편지를 보내드렸지만, 저의 목소리를 세상에 남겨두고 싶어 영상으로 만들어봤답니다. 가을밤, 편한 마음으로 청취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편지 본문도 함께 남겨둡니다! 감사합니다 :)


(유튜브 구독도 부탁드려요!)


나의 경청자에게


찬란한 햇살로 가득 찬 가을에 잔뜩 들떠있던 마음이, 불현듯 엄습한 추위에 잔뜩 움츠려 드는 오늘입니다. 부푼 마음과 함께 그려보았던 아름다운 미래, 고대하고 있는 사랑, 좀 더 나은 나 자신에게 금방이라도 닿을 것만 같았던 찬란한 희망도, 추위 때문인지 그 방향성만을 간직한 채 제자리에서 차분히 머물러있는 중입니다.

저는 요즘 중심을 잃은 것처럼 헤매고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티를 내려하지 않지만 극심한 방황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소설가를 꿈꾸었던 지난 20대에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오직 문학예술을 하는 삶이 가장 숭고한 삶이라고 단정 지으며, 소설가를 향해 자신 있게 나아갔습니다. 지난 세기들의 문학가들—괴테, 니체, 헤세, 카뮈, 푸르스트—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으며 그들의 무덤을 직접 찾아갈 정도였죠.


하지만 제가 문학에 취해있던 20대 시절에 만들었던 숭배의 제단은 이제 그 빛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숭배의 제단에서 얻었던 에너지는 첫 작품인 장편소설 <<레지스탕스>>와, 아직 발표하지 못한 장편소설 <<면죄부를 손에 쥐고>>라는 작품에 모조리 쏟아버렸던 것이죠. 그 시절의 숭배의 제단에서는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창조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지금의 30대와 앞으로 남은 저의 인생을 치기에 가득 차 있던 시절의 제단 앞에서 허비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제가 만들었던 제단을 버렸습니다. 문학예술에 대한 절대적인 헌신과 사랑, 그리고 숭배를 말이죠.


이제 제게 문학예술은 하나의 화법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인생의 전부가 아닌, 제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죠. 그것은 결코 신앙의 대상, 유일한 목적, 사랑의 대상, 그리고 지고한 가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십 년의 세월 끝에 깨달았답니다. 저는 종교를 만들고 버린 셈입니다. 안락했던 제단을 잃었고, 큰 믿음을 상실했지만 그럼에도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의 방황의 이유는 이러한 결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형이상학적인 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무엇을 믿고, 무엇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아,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할까요.


얼마 전 저는 톨스토이의 <<고백록>>을 읽었습니다. 그 역시 저와 같은 맥락의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깊이와 형태는 달랐지만 말이죠. 그는 고백록을 집필했던 노년 즈음 눈부신 문학적 명성을 얻었으며, 시대의 지식을 섭렵했고, 경제적 부는 물론 두터운 우정과, 사랑으로 가득 찬 가족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그 모든 행복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에 생동력을 주는, 살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 주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찾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삶에 대한 해답, 실존에 대한 이유를 기독교에서 찾았습니다. 톨스토이는 인간의 지성으로 꽃 피운 계몽주의와 그것으로부터 시작된 무신론으로부터 회귀해 다시금 신앙으로 돌아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톨스토이가 아닙니다. 그의 형이상학적 귀결, 삶의 결론을 그대로 받아들일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저만의 해답을 계속해서 스스로 찾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요즘 저는 책을 덜 읽고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랑과 사람입니다. 문학예술을 숭배했을 적에는 우정도 사랑도 창작의 숭고함과는 비교도 안 되는 하찮은 것이라고만 단정 지었었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쉽게도 버렸고, 친구들을 가볍게 여겼으며, 가족들과 시간을 갖지 않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읽고 쓰는 데 온 에너지를 쏟아부었었죠.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간의 문학예술에 헌신할 수 있던 에너지는 주변 사람과 사랑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주변의 기대와 관심, 응원, 도움, 그리고 사랑. 저는 그것이 없었다면 결코 문학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실 사람과 사랑이 제가 만들었던 제단보다도 더 아름다운 것이었죠.


그래서 요즘은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로부터 삶의 다양한 가치와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그동안 책으로도 배우지 못했던 살아있는 무언가를 얻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책을 출판하며 여러 사람들과 협업을 하게 되는데 그 과정 속에서 배우는 것들도 너무 많습니다. 그들과 함께하면 더 멋진 소설을 집필할 수 있을 것 만 같은 확신도 있고, 집필하고 있는 작품들에서도 그들이 전해준 아름다운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사랑을 경시하면서 이별을 쉽게도 반복하곤 했는데, 이제는 사랑을 소중히 여기며 계속해서 그 사랑의 불편함들을 기꺼이 수용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사랑과 사람 사이에서 무언가를 모색 중에 있습니다.


젊은 날의 제단과 종교를 버린 저는, 호기심과 탐구의 시선으로 세상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저의 새로운 시도들이 또다시 문학적 자양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는 제 자신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면, 지금의 저는 이 시대의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떤 인간이 될 수 있을까요. 앞으로 어떤 문학가가 될 수 있을까요. 그 답은 앞으로 제가 발표할 작품들에 고스란히 녹아 있을 것 같습니다. 저의 지난 작품과 훗날 작품의 긴 여백 사이에 이 편지가 있었음을 기억해 주시면 저는 무척이나 기쁠 것 같습니다. 이 편지는 그 두 작품을 연결해 줄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될 테니까요.


세월은 계속 흐르고, 우리는 나아갑니다. 저도 끊임없이 모색하며 나아가고 있을 오늘 그대로의, 지금 그대로의 당신을 응원하겠습니다. 다시 소식을 전할 날을 고대해보겠습니다.


우리가 함께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 어느 가을밤, 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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