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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Nov 01. 2021

이 시대의 예술가가 갖춰야 할 자질에 대하여

나의 소설가로서의 생존 방법

이 시대의 소설가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인가. 지금의 나는 무엇보다 첫 번째로 동시대성이라고 생각한다. 소설가의 동시대성이라 함은, 작품이 이 시대와 얼마큼 긴밀하게 호흡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즉 타당성과 호소력의 문제이다. 물론 문학예술은 결코 시대와 무관하지 않다. 시대에 뒤처진, 혹은 시대를 앞서간 작품이 그렇게 보일 수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모두 이 시대로부터 비롯된 작품이다. 그것은 작가가 이 시대의 문제의식에 몸을 던진 채 살아가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작품은 자연스럽게 동시대성을 띌 수밖에 없다. 다만 작품들의 호소력은 작품들의 밀도와 관계없이 시대의 파동에 의해 결정된다.


예술작품의 호소력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가령 2000년대를 그야말로 강타했던 귀여니의 소설은, 지금 이 시대에 나왔다면 결코 호소력을 갖지 못할 것이다. 2017년에 발표되었던 비의 노래 <깡>은 3년 뒤 갑작스레 인기몰이를 했고, 2017년 발표되었던 브레이브 걸스의 <롤린>은 4년 뒤 전국을 뒤흔들었다. 이것은 폴 고갱이나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이 사후에 주목을 받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예술가는 자신의 에너지를 작품에 담아낸다. 그것이 시대와 호흡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더욱이 오늘날은 막대한 자본을 쏟아부은 영화 한 편 보다, 저예산으로 한 개인이 만든 유튜브 영상 한 편이 더 큰 파급력을 갖는 아이러니의 세상이다.


예술가의 힘은 지속성이다. 자신만의 목소리와 에너지를 계속해서 발산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의 아우라를 발산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여기에 위험이 내재해있다. 그 아우라를 바라봐 주는 관객이 없으면 그 에너지는 결코 지속될 수가 없다. 관객은 마치 아름다운 유리병과도 같은 것이다. 그들의 아우라는 연기처럼 사라지지 않고 유리병 안에 고이 담기는 것이다. 자신을 담아주는 유리병이 없으면, 예술가들은 자신들을 정립할 수가 없다. 신춘문예로 등단한 얼마나 많은 문인들의 이름이 우리에게서 잊히고 말았던가. 이 지속성을 갖지 못한 예술가들은 이윽고 스러지고 마는 것이다. 마치 기둥이 꺾인 나무처럼 말이다.


예술가는 작품을 창작하는 것 못지않게, 자신의 작품에 대중의 시선이 닿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는 이것도 예술가의 자질이라 생각한다. 즉 소설가인 나는 창작 못지않게 읽혀지기 위해 분투해야 하는 것이다. 대중이 굳이 나를 읽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홀로 읽고 쓰고 정진하고 작품을 완성하는 고상한 창작자의 일만이 소설가의 일이라고 여겼다. 마치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천재 작곡가로 나오는 벤 위쇼가 골방에 틀어박혀 교향곡을 작곡하는 것처럼, 나는 그런 소설가를 꿈꾸었다. 하지만 뜨겁게 발산되는 에너지는 유리병에 담기지 못한 채 연기처럼 사라져갔다. 그건 나의 존재가 증발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벤 위쇼


스스로 읽혀질 이유를 만드는 것, 나는 이것이 바로 이 시대의 소설가가 가져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 에세이를 통해 오늘날을 '전시사회'로 정의했다. 오늘날은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를 세상에 전시할 수 있는 기회의 시대이다. 인스타그램, 블로그, 유튜브, 틱톡 등 자신의 에너지를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은 무궁무진하다. 호소력은 시대의 파도처럼 예측할 수 없이 결정되기도 하지만, 스스로 만들어 낼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하고 좋은 영화도, 연극도, 소설도, 음악도 세상이 그것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면 예술가는 스러지고 작품은 미지의 시대를 기다려야한다. 예술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자신을 노출시켜야 하는 것이다.


지난 여름 나는 소설집을 출간했다. 내가 독자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한계가 있다. 인스타그램과 블로그, 그리고 유튜브를 통해 소통하는 사람들 이외에는 모든 독자들과의 만남은 우연과 다름없다. 극히 희박한 확률이다. 대형 서점의 매대 위에서, 독립서점의 작은 서가에서 나의 책에 손을 뻗고 그것을 훑어보고 마침내 읽어봐야겠다고 결심하는 이가 몇이나 있겠는가. 그것 이외에도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는 확률을 높여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다만 그 방법이 과하거나 촌스러워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소설을 홍보하기 위해 티저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업로드 했다. 읽혀야 할 확률을 조금이나마 높인 셈이다.


다만 나는 수학에는 젬병이라 확률이 몇 프로나 올랐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예술가는 희박한 확률에 배팅을 걸 도박사의 기질이 있어야한다고 믿는다. 나는 계속 배팅한다. 앞으로 훌륭한 소설을 집필하며 동시에 꾸준히 읽혀지는 소설가가 되기 위해 말이다. 그것이 지금의 내가 소설가로서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이다.








* 소설가로 살아남기 위해 배팅한 영상들 - 소설집의 트레일러




▶ 첫 번째 수록작, 「잃어버린 고향」

; 전쟁의 아이러니와 유년의 상실, 그리고 성년에 대한 두려움에 대하여

https://youtu.be/DBgc12QdDGk





▶ 두 번째 수록작, 「페르소나를 위하여」

; SNS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극명한 자아 분열에 대하여

https://youtu.be/akswjBNPR30





▶ 세 번째 수록작, 「갑오년의 유가」

; 시험제도 속에서 꿈과 희망에 도취되어 소모되는 청춘의 단상을 그리다

https://youtu.be/G3mv2GfLTiQ





▶ 네 번째 수록작, 「야생의 사고」

;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이 시대의 절대적 가치관은 과연 타당한 것일까

https://youtu.be/f5HKCT1FqJs





▶ 다섯 번째 수록작, 「무대는 사라졌지만」

; 군 부대에서 사라지지 않는 자살 현상을 분단 제도로 진단하다

https://youtu.be/KVRKOLSBA1U






▶ 여섯 번째 수록작, 「에덴으로부터의 추방」

; 인간의 원죄의식과 성충동에 대하여

https://youtu.be/aj-47YOCRbM






▶ 일곱 번째 수록작, 「생태 교란종」

; 이제는 사회적 현상이 되어버린 성형 문화 속에서 탄생한 이들에 대하여

https://youtu.be/Hvp1J92Fza0






▶ 여덟 번째 수록작, 「회색의 함선」

; 일제 강점기, 군함도에서 희생된 어느 조선인 강제노동자의 삶을 추모하며

https://youtu.be/KghUJUksL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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