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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Feb 16. 2022

황당한 '낭만 도둑'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건전한 범법 행위로 남을 사건"

<현장 취재 : '데일리 르포'의 첫 번째 리뷰>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벌어졌다. 얼마 전 수원의 모 서점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른 아침, 서점에 출근한 사장은 화들짝 놀라고 만다. 바로 서점의 문이 활짝 열려있기 때문이었다. 분명 지난밤 문을 걸어 잠그고 퇴근했던 그는 침을 꿀꺽 삼키며 서점으로 들어선다. 서점에는 무단 침입의 흔적이 여기저기 있었다. 매대의 책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떨어져 있었다. 그는 급하게 경찰에 신고를 하고 없어진 물건이 있나 확인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의아하게 고가의 노트북도, 금고도 그대로 있었다. 그는 없어진 게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하며 금방 도착한 경찰과 함께 황급하게 CCTV를 살펴봤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밝혀진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모두가 잠든 새벽, 한 사내가 어둠을 뚫고 서점 앞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눈치를 보던 그는 무언가 결심이라도 한 듯 서점으로 서서히 다가갔다. 준비한 장비로 능숙하게 디지털 도어록을 순식간에 해제하고 서점으로 들어섰다. 어둠의 일부인 것처럼 검은색 복장에 얼굴까지 복면으로 가린 도둑은 도대체 서점에서 무얼 노렸던 것일까. 그는 손전등 하나에 의지한 채 서점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고가의 노트북과 금고가 있는 카운터를 그냥 지나쳐 버렸다. 그리고 갑자기 책이 진열된 매대를 서성이기 시작했다. 그가 서점에서 처음으로 집어 든 건 고작(?) 책 한 권이었다.


책을 가만히 살펴보던 그는 갑자기 무엇에라도 홀린 듯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갖고 있던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는 장장 두 시간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잠시 자세를 고쳐 앉기는 했지만, 시선을 책에서 떼지 않았다. 그리고 손에 쥐고 있던 책의 페이지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그는 책의 여운을 음미하듯 잠시 어둠 속에서 가만히 허공을 응시했다. 감상에 젖어 한참 동안이나 제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잠시 후, 그는 몸을 일으켜 유유히 서점을 빠져나간다. 품 속에 자신이 읽은 책을 슬며시 넣은 채. 그렇다면 그는 책을 읽으러 서점에 무단 침입했던 것일까.


황당 도둑 뉴스 취재 영상


서점 사장은 안도의 한숨을 쓸어내렸고 오히려 웃음을 터뜨렸다. 출동한 경찰들도 이런 도둑은 일례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며 웃음과 함께 이마를 짚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사장은 '선량한 문학 도둑'을 잡지 않겠다며 지난밤 벌어졌던 일을 사건화하지 않기로 했다. 경찰들은 사건보다 오히려 도둑이 매료되어 읽은 책이 궁금하다며 해당 책을 구입해 서점을 나섰다. 자신이 겪은 일을 좀처럼 믿을 수 없던 사장은, SNS에 해당 이야기를 게재했다. 하지만 좀처럼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았고, 결국 그날의 CCTV 영상을 SNS에 공개했다. 사건은 점점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히려 사건보다 주목을 받은 건 '도둑의 픽'이 되었던 책 한 권이었다.



도둑이 택한 책은 바로 이우의 소설집 『페르소나를 위하여』였다. 사건이 이슈화 되며 책은 판매량이 급증하게 됐다. 낭만 도둑 이야기는 오히려 서점의 호황을 불러왔다.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게 된 것이었다. 손님들은 도둑이 책을 읽고 간 장소에서 똑같이 독서를 하기도 하고,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고, 또 '도둑의 픽'을 구입해서 갔다. 사장은 결국 붐비는 손님들을 위해 '도둑의 픽' 코너를 영구적으로 운영해 사건을 기념비적으로 남기기로 했다. 오히려 위기가 기회가 된 셈이었다. 출판사에서는 넘치는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페르소나를 위하여'의 재인쇄에 착수했고, 갑자기 주목을 받게 된 저자는 도둑에게 감사를 표했다.



사건은 이렇게 종결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도둑의 행보는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가져왔다. 서점은 호황을 맞이했고, 소설가는 주목을 받았으며, 세간에 큰 웃음을 선사했고, 영상 콘텐츠가 주목받는 시대에 때아닌 문학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도둑은 문학을 향유했다. 이렇게 모두가 좋을 수 있는 도둑질이라면, 우리 사회는 이러한 범죄를 용인할 수 있을까. 하지만 도둑질은 엄연한 범법 행위이기에 용인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해당 사건을 취재한 데일리 르포의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사건은 앞으로 도둑이 잃어버린 양심을 회복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건전한 범법 행위로 남을 것이다."







*해당 본문은 영상과 책 홍보를 위해 픽션을 가미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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