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목숨값

by 이진영

요즘 나쁜 말버릇이 들었다. 자조적으로 버러지 같은 인생이라고 투덜대는 것이다. 요 며칠을 돌아보면, 이건 욕이 아니라 정확한 묘사일지도 모른다. 해야 할 일은 까마득하게 쌓여 있는데, 모든 것을 미룬 채 미적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쩌면, 벌레보다 못한 인간이다.


언젠가 살려고 바둥대는 바퀴벌레를 본 적 있다. 병을 뒤집어 가두자, 벌레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동동거렸다. 주위를 끊임없이 돌고, 힘을 주어 유리병을 밀고, 병의 천장까지 기어올랐다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치열한 사투 끝에 벌레는 병 밖으로 기어 나왔다. 그 작은 뇌로도 살아 보겠다고 낑낑대는 꼴이 애처로웠다. 그것도 네 운명이겠지, 생각하며 애써 시선을 돌렸다.


며칠 후, 복도에서 운 나쁜 바퀴벌레와 마주쳤다. 그날의 나는 왠지 악에 받쳐 있었다. 저 생명체가 살아서 발발거리는 꼴이 보기 싫었다. 한술 더 떠 벌레는 죽음을 자초했다. 내 쪽으로 빠르게 기어 오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빗자루로 벌레를 냅다 후려쳤다. 벌레는 한 번도 움직여보지 못한 꼴로 죽어 버렸다. 살아보겠다고 악다구니 한 번 못 써보고 맥없이 찌그러진 것이다.


그것은 나의 첫 번째 살생이었다. 모기 한 마리 못 잡던 내게, 엄지손가락만 한 벌레의 사체는 너무 급작스러운 것이었다. 빗자루로 벌레였던 것을 쓸어 담는데 괜히 눈물이 났다. 벌레는 보이는 것보다 단단하고 가벼웠다. 그 무게는 너무 연약해서, 맥이 끊기는 동시에 그 안에 있던 무언가가 빠져나간 것만 같았다.


벌레의 목숨값은 내게 단단하고 가벼운 죽음의 무게를 알려줬다. 아무리 해충이라고 해도, 내 기분에 따라 그것들의 목숨을 저울질하는 게 가당키나 한가. 하루하루 의미 없이 사는 내게 목숨을 저울질할 자격이 있는가.


오늘 밤, 나는 살려고 바둥거리던 벌레와 맥없이 죽어 버린 벌레를 생각한다. 가벼운 그것이 내게 가르쳐 준 죽음의 무게를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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