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음식을 팔팔 끓여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다. 6년 전,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갈 무렵에도 그랬다. 출국 전 먹은 국밥에 입천장을 홀랑 까먹은 것이다. 일본에 도착해서는 길거리 타코야끼에 혀를 데었다. 결국 나는 일본 여행 내내, 맛도 멋도 모른 채 모든 음식을 깨작거려야만 했다.
이런 성미는 음식 취향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일하고 사람을 만날 때까지 앞뒤 안 재고 뛰어들기 때문이다. 조심스레 손을 대 보고, 나에게 맞는 온도를 찾아야 다치지 않을 텐데. 그러지 못했기에 내 마음은 많이도 까지고 데었다. 안 다쳐본 데가 없지만, 그중에서도 화상은 아프고 또 아프다. 나으면서도 진물이 끊임없이 흐르고, 다 낫고 나서도 진한 흉이 남기 때문이다.
언젠가 사람에게 데인 적이 있다. 월요일 점심을 먹고, 일이 터졌다.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하루가 지나고 다다음날인 수요일 점심에야 숟가락을 들었다. 위는 굳을 대로 굳어 배고픔도 느끼지 못했지만, 온몸에 힘이 없고 정신이 몽롱했다. 말 그대로 살기 위해서 죽을 욱여넣었다.
그런데 죽이 너무, 너무 뜨거웠다. 순식간에 입안을 데었다. 마음을 너무 데워둬서 상처 입은 주제에, 그걸 잊고 금방 또 데인 꼴이 우스웠다. 죽을 식히려 숟가락으로 몇 술을 뜨고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죽을 헤집는데 마음이, 또 세상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마음의 온도가 너무 높으면 식는 데 한참 걸린다. 억지로 식힐라치면 헤집고 또 헤집어 분명히 아플 것이다. 나는 왜 그 진리를 일이 터지고 나서야 안 걸까. 죽을 삼키면서 되뇌고 또 되뇌었다. 적당히 미적지근한 사람이 돼야지. 그래야만 상처 주지 않고 상처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삼 년이 지난 후. 역설적이게도 나는 여전히 뜨거운 음식을 좋아한다. 30초 돌리라고 돼 있는 치즈 핫도그를 3분 동안 돌리는 사람. 결국 치즈를 다 태워 먹고 눅눅해진 빵만 질겅질겅 씹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가 보다. 입천장 한 번 시원하게 까먹더라도, 나는 여전히 주어진 일과 사람에 충실할 것이다. 뭐 별수 있나.
나를 지나쳐 간 모든 이가 행복하기를. 나는 아플지언정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