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익숙한 글씨체로 빽빽하게 채워진 태교 노트가 두 권 있다. 이름을 짓기도 전, 엄마는 나를 '아가'라고 칭했다. 아가야, 엄마는 너를 사랑한단다. 네가 만약 여자라면 네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고, 네가 만약 남자라면 네 아빠 같은 사람이 되렴. 글로 남은 그 말랑하고 달콤한 마음은 나를 자라게 했다. 그로부터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그때에 머물러 있다.
역설적이게도, 어려서부터 나는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네 살 때, 유리창 옆에서 물구나무를 서다 유리를 깨 먹었다. 유리 조각이 여린 살을 사정없이 찢었다. 복숭아뼈 부근에서 피가 쏟아졌고, 생전 처음 보는 피에 덜컥 겁이 났다. 놀라 울음을 터뜨리려는데, 엄마가 조금 더 빨랐다. 나는 피 웅덩이 위에 앉아서 엉엉 우는 엄마를 위로했다. 엄마, 나 괜찮아. 하나도 안 아파. 어린 마음에도, 벌어진 상처보다는 엄마의 우는 모습이 더 아팠던 것 같다.
나는 공감 능력에 반비례하는 조심성을 가지고 있어서, 여기저기 많이도 다쳤다. 눈 옆이 찢어져 왼쪽 눈이 실명할 위기에 처했을 때도, 오른쪽 발에 TV가 떨어졌을 때도, 왼쪽 허벅지에 끓는 물이 쏟아져 붕대가 진물로 푹 젖었을 때도 나는 울지 않았다. 당시 엄마는 어렸던 동생들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 엄마가 울며 걱정하면 마음이 따가웠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속상함과 씁쓸함을 배웠다.
동생들이 어느 정도 자라고 나니, 그동안 못 받았던 사랑이 받고 싶어졌다. 어느 날, 엄마 한정 어리광을 부리며 사랑을 갈구했다. 나를 귀여워해 줬으면, 더 사랑해줬으면, 그런 절박함이 발현됐던 것 같다. 그러나 엄마는 대번에 말했다. 너 그 동화 알지? 너 지금 강아지가 되고 싶은 망아지 같아. 이 동화는 강아지가 귀여움을 받는 것을 부러워한 망아지의 이야기다. 망아지는 주인의 방 안에 들어가 애교를 부리다가, 그 과정에서 밥상을 뒤엎고 영영 내쫓긴다. 동화의 교훈은 간단하다, 주제를 알고 상황 파악을 잘 하자.
그 말을 듣자 세상이 내려앉았다. 지금까지 감정이 없었던 게 아니다. 그저 사랑도 고통도 참아왔던 것이다. 엄마와 동생들을 배려한 처사가 이렇게 돌아오니, 멍하고 또 멍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온 세상 사람들에게 버려진 것만 같았다. 수많은 발에 차이다 못해 꾹꾹 밟혀 구석에 처박힌 기분이었다.
그래서일까? 스물셋의 나는 많이도 아팠다. 제 기능을 다한 마음은 어디에 가야 고칠 수 있을까. 예전처럼 말짱해질 수는 있는 걸까. 오늘도 엄마가 태교 일기를 쓰던 무렵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펄쩍펄쩍 뛰어도 잡을 수 없는 뜬구름 같은 소리지만, 속는 셈 치고 진심을 다해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