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없는 짐승들

by 이진영

오랜만에 정육점에 들렀다. 마스크를 뚫고 고기 특유의 비린내가 훅 끼쳤다. 닭 두 마리를 주문하고 서 있자니 부위별로 조각난 고깃덩이가 보였다. 깔끔하게 손질된 고기는 비닐랩으로 꼼꼼히 감싸져 있었다. 붉은 조명까지 받으니 그것들은 살아 있던 게 아닌, 공장에서 갓 생산된 상품 같아 보였다.


탕 탕 탕, 위협적인 소리에 주방을 들여다봤다. 머리가 없는 하얀 닭 두 마리가 도마 위에 놓여 있었다. 곧이어 뼈와 살을 가르는 칼질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뼈가 부서지고 살이 썰리는 소리가 선명했다. 묘한 기분을 뒤로한 채, 묵직한 고깃덩이를 받아 들고 집으로 향했다.


문득 십여 년 전 초등학교 무렵이 생각났다. 학교 옆 정육점에는 늘 통돼지가 있었다. 돼지는 온전할 때도 있고, 세로로 잘린 채 조각난 몸을 하고 있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돼지의 머리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린 눈으로 보기에 그 현장은 징그러웠고, 역했으며, 무자비했다. 숨이 끊어진 몸뚱이를 행인마저 볼 수 있도록 널어둔 것은, 한때 생명이었던 것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우리는 왜 동물을 잡을 때 머리를 제일 먼저 떼는 걸까. 머리를 떼내면, 이것이 한때 생명이었다는 것을 외면할 수 있게 되는 걸까. 이 동물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삶을 살 수 있었는가는 상관하지 않은 채, 그냥 먹어치우면 없던 일이 되는 것일까.


집에 오는 길은 유난히 길었다. 귀갓길 내내 머리 없는 짐승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나 음식 가지고 입맛 떨어지게, 따위의 말로 타박을 들을까 말을 아꼈다. 그저 이런저런 생각에 젓가락을 일찍 놓았다. 지금 이런 감정으로 배를 채우기에는,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었다.


모 배우는 육식을 비판하는 책 한 권을 읽고 이십 년 가까이 채식을 했다고 한다. 나는 관련 책을 몇 권이나 읽었으면서도 아직 고기를 끊지 못했다. 상황을 알면서도 바꾸려 노력하지 않는 것은 분명 부끄러운 일이다. 공장식 축산과 비윤리적 도축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폭발적 소비. 우리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머리 없는 짐승들에 열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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