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1월 19일 목요일에는 첫눈이 왔다. 나는 그날 태어났다.
22년 전 이맘때였다. 스물일곱의 엄마는 갑작스러운 진통에 산부인과를 찾았다. 퇴근을 준비하던 간호사들은 배를 부여잡은 산모를 서둘러 맞았다. 조용하던 병원에 긴장 어린 활기가 돌았다. 곧이어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나를 조심스레 안았다. 창밖에는 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첫눈 오는 날 태어난 덕분에 나는 한동안 송이, 설이, 혹은 설아라고 불렸다. 모두 눈(雪)과 관련된 단어들이었다. 어딘가 낯간지러운 이 단어들은 한동안 나를 까르륵 웃게 하는 내 이름이었다. 부모님은 아직도 내 아명 이야기가 나오면 들뜬 목소리로 그때를 상기하신다. 어쩌다 진통이 왔는지, 그날 눈이 얼마나 펑펑 왔는지, 내가 그 이름을 부르면 얼마나 좋아했는지.
그러나 지금 내 이름은 진영(珍瑛)이다. 보배 진에 옥빛 영, 풀이부터 돈 냄새가 나는 이 이름은 작명소에서 받아 온 것이다. 할아버지는 당시 첫 손주였던 소중한 내게, 역설적이게도 작명소 이름을 주셨다. 딴에는 돈과 마음을 쓰신 것이겠지만, 사실 나는 내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 이름에는 의미가 없다. 동생들처럼 새벽빛 서에 비칠 영, 바를 정에 진압할 진 같은 좋은 뜻은 바라지도 않는다. 앞으로 평생 무언가를 구매하면서 살아갈 텐데, 그 처음이 이름이라니. 서운함을 넘어 조금 통탄스럽기까지 하다. 간간이 보이는 동명이인들을 보면 어딘가 숨고 싶어진다. 의미 없고 흔한 이름을 가졌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그래서 특이한 이름을 좋아한다. 외자나 한글 이름 같은 특이한 이름을 가진 사람을 보면 마음이 쓰인다. 부러워하는 마음 반, 왠지 모르게 좋은 마음 반이다. 그 사람은, 흔치 않은 이름만큼 찬란하고 소중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 사람을 아는 이는 비슷한 글자라도 볼라치면 불쑥 그 사람 생각을 하지 않을까.
내 흔한 이름을 보고도 오롯이 나만 떠올리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흔하디 흔한 이름이라도, 걸음마다 내 생각이 밟혔으면. 그의 발길에 차이는 돌멩이마다 내 이름이 새겨져 있었으면. 그렇게 소망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