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듯 짐을 쌌다. 죽지 않으려면 떠나야 했다. 그렇게 일 년 반 만에 혼자 살게 됐다. 오기 싫었던 고시원에 짐을 풀었다. 개미굴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방 중 하나에 들어왔다. 조용하고 밝은 공간이 시리도록 싫었다. 순간 이명이 쨍하니 귀를 울렸다.
혼자가 된 나는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만나지 않는다. 아무도 없어 나 혼자 머릿속으로 묻고 답한다. 그것마저 지치면 무기력하게 침대에 눕는다. 시야에 훨씬 못 미치는 천장이 싫었다. 이곳이 내 관이라도 되는 양 숨이 턱 막혔다.
삼월의 봄은 언제나 낯설고 섧다. 추위에 몸을 구부리며 잠을 청했다. 끈을 붙잡을 새도 없이 생각이 시작됐다. 이 모습 그대로 죽어버리고 싶었다. 갑자기 용암이 덮쳐 이대로 굳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폼페이처럼, 내가 사는 이곳에도 최후의 날이 닥치길 바랐다.
어쩌면 나는 최후의 날을 기다리는 광신도같이 산다. 약보다는 술을 가까이하는 나날이 하루, 이틀, 사흘로 늘어난다. 불가항력적으로 우울과 불안, 그리고 강박은 나를 에워싼다. 겹겹이 싸인 나는 숨을 쉴 수 없다. 하루하루 그냥 살아내고 있는 것뿐이다.
기다리던 병원 상담 날, 나는 울며 들어가 오열하며 나왔다. 모든 것을 낱낱이 고했다. 가족들과의 관계, 나의 심경, 우울감, 불안증세, 그리고 초 단위로 나를 압박하는 강박까지. 나아지던 상처가 다시 썩어가고 있었다. 약과 상담 횟수를 늘리기로 결정했다. 집에 오는 길에서는 온통 절망과 슬픔, 부끄러움이 밟혔다.
현관 앞 창문으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온몸이 뭉개진 채 죽어 있는 내가 얼핏 보였다. 눈이 마주치자 그 인영이 뛰어올랐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네가 죽으면 이것들은 다 누가 책임져? 지금 와서 죽으려면 애초에 태어나지를 말았어야지. 책임감. 그놈의 책임감이 뭐라고 나는 벼랑 끝에 몰려서도 남겨질 사람들을 생각하는가. 내가 조금만 더 이기적이었더라면, 생각한다. 그랬다면 진작에 이 굴레를 끊고 혼자만의 안식에 들어갔을 테니.
이렇게 외치는데 왜 아무도 나를 붙잡지 않을까. 내가 죽고 나서야 나를 찾을까. 식어 버린 몸을 품고 미안하다고 울부짖을까. 그러면 그 음성은 내게 닿을까. 아니면 허공에 부서져 없어질까.
젊어서 그렇다는 말로 포장하기에는, 나는 유난히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