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Color in Music Festival 2025 Review
2022년. 코로나가 죽어가며 세상에 활기가 돌기 시작하던 시기다. 개인적으로도 지겨운 칩거 생활을 끝내고 이런저런 전시회나 공연에 다니며 방탕해지기 시작했었다. 난생처음으로 페스티벌에 갔다가 폭군들이 주색잡기에 빠지는 이유를 이해했었다. 물론 내 손에 들린 것은 치즈 가루 묻은 회오리 감자였으며 눈앞에 선 사람들은 기타 피크나 드럼 채를 쥐었지만.
오월 말의 땡볕 아래서 진행되는 페스티벌이었고, 그동안의 칩거로 근육이 죄다 빠져있었고, 돗자리도 없이 계단에 드러누울 수밖에 없었다. 친구와 말린 오징어마냥 나란히 누워서 무슨 대화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조금만 쉬자며 합의하고 눈을 붙이려는데, 카운트 다운이 끝나자마자 커다란 함성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샤우팅이 들렸다. 동시에 고개를 들고 가수를 확인했다. 조금은 앳된 남자가수가 청바지를 입고 무대를 마구 뛰어다니고 있었다. 심각한 체력 고갈로 인해 뛰쳐나가진 못했지만 누워서 팔을 마구 흔들었다. 잠에 들기 직전인 상태였는데도 신나게 만드는 공연이었다. 며칠 뒤에 무대 영상이 소소하게 화제가 되는 것을 보며 스탠딩으로 나가보지 않았던 일을 친구와 후회했다.
그리고 2년 뒤에 배가 더욱 아파질 일이 생겼다. 해당 가수가 군대에 가서 엄청난 '드라우닝 붐'을 일으킨 것이다. 바로 앞에서 볼 기회를 놓쳐버린 그 가수는 바로 우즈(WOODZ)였다. 자양강장제라도 원샷하고 무대 앞으로 갔어야 했다며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런데 이번 달에 금전적으로도, 타이밍적으로도 완벽한 기회가 생겼다. 시험이 끝나고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에서 열리는 「2025 Color in Music Festival」에 가게 된 것이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인천으로 향했다.
미리 말하자면, 출연진부터 배경까지 완벽했던 페스티벌이었다.
라인업이 처음에 떴을 때부터 눈여겨보기는 했다만, 진정한 진가는 현장에서야 알아볼 수 있었다. 애플뮤직이나 스포티파이에서야 선율이 좋으면 그만일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탄탄한 성대만이 듣는 이들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다. 그런데 11월 1일의 출연진들이 공교롭게도 전부 라이브에 강했다. 그래서 '이 무대만 보고 돗자리로 가야지' 하다가도 홀린 듯이 무대 앞으로 걸어 나가는 반복이 있었다.
송소희 「Not a Dream」만을 기대하고 갔는데 모든 곡이 좋았다. 마치 RPG 게임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이런저런 아이템들을 챙겨서 잔디밭에 도착하자마자 들은 음악이었어서 더욱 그랬다. 특유의 국악 창법이 섞인 목소리가 뻗어나가는 와중에 무대 너머로 인천공항 비행기가 날아올랐다. 인천 파라다이스시티는 어쩌면 페스티벌을 하기에 완벽한 장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즈 3년 전에 가졌던 한을 이날 완벽하게 풀었다. 현장에서 듣는 락스타의 라이브는 확실히 카타르시스를 만들어 낸다. 덕분에 작년부터 여기저기서 들렸기에 익숙해졌던 드라우닝이 완전히 새롭게 다가왔다. 여기에 더해서, 한 달 전에 나온 신곡을 듣고 그대로 반해버렸다. 컬러 인 뮤직페스티벌에서는 친절하게도 전광판에 가사를 띄워주었는데, 부딪혀 버린 걸 애써 닿은 거라 생각했어라는 가사를 읽으며 조승연을 사랑했던 이유를 다시 깨달았다. 모두들 「I'll Never Love Again」을 들어보기를 바란다.
이찬혁 사랑의 종말론을 설파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는 동안 사랑이 가득했다. 해가 점점 자취를 감추고 반짝이는 무대 조명들이 주위를 밝히자 사람들은 대담해지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상대와 손을 잡고 자유롭게 춤을 추었다. 페스티벌보다는 파티장 같은 분위기였다. 이찬혁의 무대에서 유독 그랬다. 함께 분위기에 취해서 핫팩을 마구 흔들었으며, 여운이 가시질 않아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찬혁의 이번 앨범을 돌려 들었다.
간헐적으로 내리던 비가 잔나비의 순서가 오자 폭우가 되었다. 볼품없이 젖어버린 돗자리를 접으며 그동안 참 운이 좋았구나 생각했다. 그래도 3년 동안 꾸준히 페스티벌을 다녔는데, 항상 날이 화창했기 때문이다. 이슬비조차 맞아보지 않았어서 보송하게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줄로만 알았다. 그나마 다행히 비는 금방 그쳤으나 머리는 물미역이 되었고 아이라인은 다 번졌다.
어차피 마지막 무대인데 그냥 돌아가 버릴까 고민하고 있는데 앞에서 악기를 조율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최정훈이 마이크를 들었고 조금 더 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보컬의 실물이 잘생겨서 남아있던 건 아니다. 아마도.
확실히 아는 노래가 많아서 재미있었다. 낯선 곡이더라도 잔나비의 스타일 자체가 익숙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었다. 그래서 집에 가려던 일은 까맣게 잊고 뛰어놀고 있는데 그친 줄 알았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바람도 마구 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주최 측에서 나누어 준 우비를 챙겨입고 옹기종기 모여서 환호성을 질렀다. 밴드 멤버들도 빗속에서 공연을 이어 나갔다.
가수가 앞에서 목청껏 부르고 있는 청춘 찬가와 완벽하게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청춘은 역경으로 인해 비로소 아름다워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며 청년 에세이의 첫 줄 같은 생각을 했다. 만약 극적으로 쏟아지는 비 없이 조명을 저렇게나 쏴댔다면 눈이 피로하여 집에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난스러운 상황과 묘하게 합쳐지니 그저 감동적일 뿐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역경이 필수불가결하다면 되도록 쪼개서 와줬으면 하는 바람이 들긴 한다.
사실 페스티벌의 형식은 다 거기서 거기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차별화를 위해 인터미션 때 갑자기 코끼리나 서커스단을 불러올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입장 팔찌를 받기 위해 나란히 줄을 서고, 가수들이 나와서 한 시간가량 감동을 주고, 50분의 쉬는 시간을 가지고, 맛있는 음식을 팔고. 그것이 페스티벌의 법칙이자 매력인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익숙한 반복이 조금 질려가던 것도 같다.
그런 와중에 「2025 Color in Music Festival」은 뭔가 달랐다. 수시로 이륙하는 비행기들과 고막이 쉴 틈 없는 실력파 가수들의 향연은 익숙함 속에서도 자극을 주었다.
처음으로 갔던 페스티벌에서 인상 깊게 봤던 가수를 다시 만나는 자리였다는 사실도 권태로움을 날려버렸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무슨 초심이냐 물으면, 한 명의 관객으로서 아쉬움 없이 즐기고자 하는 자세라고 답하겠다. 비가 쏟아졌던 상황도 굉장한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달려보는 것이 버킷리스트였는데 이날 완벽하게 이룬 것 같아서 뿌듯하다.
인천 파라다이스 시티에서의 하루가 페스티벌과 청춘에 대한 권태로움을 덜어주었다. 그래서 저절로 「2026 컬러 인 뮤직페스티벌」을 기대하게 된다. 내년 이맘때쯤에 철새처럼 이곳으로 다시 찾아올 것 같다. 그때에도 지금은 알 수 없을 어떠한 싫증을 안고 있겠지만. 취업에 대한 내용일지 혹은 인간관계에 대한 내용일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좋은 가수들과 쏟아지는 빗줄기가 이번처럼 고민들을 시원하게 날려줄 것이라고 믿는다.
* 아트인사이트(https://www.artinsight.co.kr/)에서 티켓을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