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지난 3년간의 도쿄 생활을 마무리하며

by 이예은

2018년 1월 1일 밤 열두 시. 온 국민의 사회적 나이에 일이 더해지는 그 시간, 나는 시어머니의 손에 이끌려간 한국의 한 시골 교회에서 남편과 시동생과 나란히 앉아 서른을 맞이했다. 한국을 떠나면 만 나이로 돌아가 잠시나마 이십 대에 안주할 수 있겠지만 도둑처럼 나타난 서른이라는 숫자는 지난 십 년을 되돌아보게 했다.


홍콩과 서울, 그리고 도쿄, 이 세 개의 도시에서 단계적으로 성숙한 나의 이십 대.


스물, 원하는 대학에 모두 떨어진 나는 아무 연고도 없는 홍콩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장학금 때문에 선택한 대학과 전공인데도 금융위기로 인해 생활비가 두 배가 되자 끊임없이 자퇴의 유혹에 시달렸다.


주변의 도움으로 겨우 졸업하고 스물셋, 서울에 돌아와 고시원에 살며 통번역대학원 준비를 시작했다.


스물넷, 학원비를 벌기 위해 NGO에서 월 백만 원 남짓 받으며 영한 번역을 하다가 대기업 공채에 덜컥 합격해 대학원 준비를 그만두었다. 대기업 입사로 그동안의 모든 실패를 만회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스물일곱, 한 때 열정 넘치는 신입사원이었을 나는 흔한 직장인 우울증에 시달리다 퇴사를 하고 도쿄로 유학을 떠났다.


스물아홉, 스스로 보기에도 형편없어 보이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공부보다 열심히 한 연애 덕분에 결혼을 했다. 그 사이에 공저자로 첫 책을 냈고, 일본의 한 스타트업에 경력직으로 취업했다.


그리고 서른, 나는 아직 등장하지 않은 새로운 나라, 새로운 도시로의 이동을 앞두고 있다.


그래서인지 홍콩과 서울은 차치하고서라도, 내가 이십 대의 마지막을 보낸 도쿄를 기록하고 싶어 졌다. 정해진 이별의 몇 안 되는 순기능 아닌가. 정리할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


교환학생으로 처음 찾은 도쿄의 무엇이 나를 그토록 매료시켰는지, 퇴사 후에 다시 찾았을 때는 또 어떻게 나를 위로해 주었는지. 또 간혹 권태감과 절망감을 주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 감정을 나는 어떻게 소화했는지.


그래서 지금 이십 대와 작별하며 시작하는 프로젝트의 첫 주제는 도쿄다. 오글거리는 프로젝트명 <마이 글로리어스 도쿄(My Glorious Tokyo)>는 진부하지만 내 영어 이름인 글로리아에서 따왔다.


마이 글로리어스 도쿄 시리즈는 온라인 서점에서 ‘도쿄 여행’을 검색했을 때 쏟아질 그 무수한 결과에 비하면 부족한 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모든 여행책 중 어디어도 없는 이야기가 분명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유학과 연애, 결혼 그리고 직장생활까지 단 기간에 압축적으로 경험을 한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삶이 담겨 있으니까.


부디 당신에게 아직 소비되지 않았을 도쿄를 이 글을 통해 찾게되기를 기원한다.



2018년 1월 14일

글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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