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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은 Jun 22. 2021

외국인 상담원이라는 무기 혹은 약점

국내 콜센터에 전화했는데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외국인이 받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말만 통하면 상관없다는 사람도 있을 테고, 우리나라말을 구사하는 외국인이 신기하고 반가운 사람, 그리고 왠지 믿음직스럽지 못해 한국인 상담원을 찾는 사람 등 반응은 제각각일 것이다. 


내가 일본에서 콜센터 상담원으로 근무하며 만난 현지인 고객도 마찬가지였다. 전화가 연결되면 상담원은 가장 먼저 인사와 함께 자신의 성을 밝힌다.


お電話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OOOの佐藤が承ります。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OOO의 사토가 받겠습니다.


일본 회사에서는 이름보다 성을 쓰는 경우가 많다. 동료라면 성에 '상(さん)'을 붙여 '사토상'이라고, 고객이라면 성에 '사마(様)'를 붙여 '사토사마'라고 부르는 식이다.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도 마찬가지. 나는 '이(イ)'보다 '리(リ)'가 어감이 좋다는 선배의 말에 '리상'이라고 불리기로 했다(어차피 여권 상 표기는 'Lee'이니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고객에게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OOO의 리가 받겠습니다'라는 오프닝 멘트를 던지면, 단번에 외국인임을 알아차리는 사람도 있고, 일본 성씨인 '모리'나 '호리'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름을 유심이 듣지 않았다면, 나중에 가서 '외국인인지 전혀 몰랐다'라며 놀라기도 한다(내 일본어 실력이 뛰어나서라기 보다는, 외국인이 콜센터에서 일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해서다). 하지만 통화가 길어지거나 내용이 복잡해지면, 아무래도 위화감이 느껴지기 마련. 변명일 수도 있겠지만, 성인이 된 후 일본어를 시작한 나와 같은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원어민과 똑같은 발음과 억양을 구사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열의 아홉 통에서는, 내 국적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외국인임을 알고 나면 '일본에 얼마나 사셨어요?'라던가 '중국인이세요, 한국인이세요?('리'는 중국에서도 흔한 성씨다)' 등 무해한 호기심을 드러내는 분이 많아, 약간의 사담을 나누는 사이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기도 한다. '일본어 정말 잘하시네요'라던가 '일본 생활 힘내세요'라는 식으로 기운을 북돋아주시는 분도 계신다.


또 상담 후 고객에게 자동 발송되는 상담원 평가에서 '외국인이셨는데, 일본어로 열심히 상담해주셔서 감사했어요'라는 코멘트를 받은 적도 많다. 콜센터의 KPI는 일반적으로 매일 해결한 문의 수와 고객의 소리를 통해 집계된 평가, 그리고 기타 매니저 평가로 집계된다. 외국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내게 후한 점수를 준 고객이 분명 적지 않았으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반대로 외국인이라는 사실이 내 아킬레스 건이 될 때도 많다. 고객이 원하는 바를 얻지 못했을 때, 상담원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 위해 이런 말을 던지기 때문이다.


외국인이라 말이 안 통하는 것 같으니까, 일본인 상담원 바꿔주세요.


물론 고객이 상담원 변경을 희망한다면, 들어주기 어렵지는 않다. 하지만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중국인이든, 같은 회사 소속이므로 매뉴얼은 동일하다. 상담원을 바꾸면 문제 해결에 걸리는 시간만 지체될 뿐, 고객에게 큰 소득은 발생하지 않는다. 


게다가, 외국인이라서 싫다는 고객 중 일본인으로 바꿔서 상담이 원활히 진행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일본인 직원을 연결하면, 또 다른 꼬투리를 잡기 때문이다. 남자 직원을 바꾸라거나, 상사를 바꾸라거나. 처음에는 이런 고객에게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내 국적이 아닌 그 사람의 문제임을 알고 나서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고객의 입장에서 일본인 상담원과 외국인 상담원이 똑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다닌 콜센터에서는 외국인 상담원이라고 해서 업무 능력이 떨어지거나, 일을 대충 하는 직원은 없었다. '외국인이라 감동했다'라는 긍정적인 반응도, '외국인이라서 싫다'라는 부정적인 반응도 어쨌거나 차별 대우인 것은 마찬가지.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다면, 국적이 다르다는 사실이 크게 중요하지 않기를 바라는 건, 나의 과한 욕심일까. 


일본어 콜센터 표현:

さようでございます。
(사요우데고자이마스)

그렇습니다.


대표 이미지: Photo by Eutah Mizushim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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