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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은 Jun 22. 2021

콜센터 직원의 멘탈 관리법

콜센터는 커뮤니케이션 능력만 있다면 들어가기는 어렵지 않을지 몰라도, 버티기는 꽤 힘든 일터다. 내가 일본 콜센터에 몸담은 1년 5개월 동안, 잊을 만하면 누군가의 퇴사 메시지가 메일함에 들어왔다. 심지어 내가 퇴사한 달에도 그만둔 사람이 3명이나 더 있었다. 간혹 생기는 부서 이동의 기회도 늘 치열한 경쟁률을 기록했다. 콜센터라고는 해도 영어 능력이 필요했기에, 보수가 낮은 편은 아니었다. 업계에서는 드물게 정직원이고, 성적에 따른 상여금도 있었다. 그럼에도 많은 동료들이 기회만 되면 이곳을 떠나고 싶어 했다. 왜일까.


흔히 콜센터 업무를 감정노동의 대명사라고 한다. 하지만 세상에 기분 내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며 돈을 버는 사람은 없을 테니, 모든 노동자는 조금씩 감정 노동을 하며 살아간다. 다만, 콜센터 직원은 기본적으로 불만을 처리하는 사람이다 보니, 그 강도가 조금 더 높을 뿐이다.


서비스를 문제없이 사용하고 있다면, 애초에 전화할 필요도 없었을 터. 기본적으로 고객은 기분이 상한 상태에서 상담원과 연결된다. 컴플레인 처리가 업무의 일부이긴 해도 전부는 아닌 호텔리어나 승무원, 판매원과의 차이점이기도 하다(그렇다고 해서 그분들의 업무가 덜 힘들다는 뜻은 아니다). 게다가 회사는 영업이나 개발 등 타 부서에 비해 콜센터에 들이는 비용을 유독 아까워한다. 최소한의 인력만 유지하다 보니, 긴 대기 시간도 고객의 짜증을 유발하기 쉽다.  


또한, 다른 서비스 업무와 달리 콜센터는 고객이 상담원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일 필요가 없다. 그래서 감정을 더 여과 없이 분출하는 건 아닐까. 상담원이 고객의 말을 경청하고, 어떤 경우에도 화내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다른 곳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애꿎은 콜센터 직원에게 푸는 고객도 적지 않다. 그런 사람이 모두 반사회적인 악인은 아닐 것이다. 어차피 인간은 누구나 사회적인 가면과 본능적인 욕구 사이에 갈팡질팡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평소에는 드러내지 않는 내면의 추한 모습을 얼굴 없는 상담원에게는 쉽게 내보이고 마는 것이리라.


그러므로 무례함을 견디는 일은 상담원의 숙명이다. 이 또한 월급에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으로 업무에 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담원도 사람이기에 상처를 입고, 일을 지속하려면 자신만의 멘탈 관리법을 터득해야 한다. 나도 결국 이직을 선택했지만,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520일을 버틸 수 있었다.


1. 고객의 폭언보다는 감사의 말 한마디를 마음에 새긴다.

고객 문의에 회사 매뉴얼과 개인 재량을 활용해 대응하는 것이 상담원의 일이다. 문제를 해결했거나 상담이 완료되었을 때, 대부분의 고객은 예의상 ‘감사합니다(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도움이 됐습니다(助かりました)’, 혹은 '수고하셨습니다(お疲れさまでした)'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생각해보면, 누군가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그토록 직접, 자주 듣는 직업은 흔치 않다.


한 번은 업무를 하며, 소위 말하는 '진상'의 수를 세어 보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화만 내거나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난폭한 말을 쏟아낸 고객은 50여 통 중에 고작 4통. 물론 웬만한 무례함에는 적응이 되어 내 기준이 관대했을지도 모르지만, 마음 다치지 않고 응대한 전화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게다가 설령 누군가 나에게 폭언을 했다 한들, 내 감정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나 자신이다. 당장의 억울함은 어쩔 수 없어도, 내 처지를 비관하거나 이유 없는 불안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극소수의 몰상식한 고객이 준 상처는 최대한 빨리 극복하고, 감사의 말만 내 안에 남겨두도록 하자.


2.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다.

여기서 타인은 회사 안팎의 타인 모두를 아우른다.  콜센터 상담원의 평가 기준은 다른 직무에 비해 명확하고 객관적이다. 하루에 받은 전화 수, 고객의 평가가 모두 수치로 측정되며, 이렇게 계산된 KPI는 매일 성적표처럼 업데이트된다. 나보다 성적이 높은 직원으로부터 노하우를 배우는 것은 좋지만, 그 사람처럼 되지 않는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나만의 페이스대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니까(물론 성적이 많이 낮다면 매니저의 압박은 있을 수 있다).


회사 밖의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일도 위험하다. 다행히 나는 콜센터에서 일하며 글을 쓴다는 자부심이 있었기에, 근사한 직장에 다니는 친구와 지인을 보며 드는 열등감을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뉴스에서 나보다  열악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을 보며 '그래도 콜센터 정도면 괜찮지'라고 위안 삼는  모습을 발견했다. 감히 내가 뭐라고 단편적인 기사나 영상을 통해  사람의 인생을 판단할  있을까. 나는 그저  삶에 주어진 것에 순수하게 감사하면 된다. 누군가보다  갖고 있어서가 아닌, 그저 갖고 있다는 사실에 말이다.


3. ‘상담원으로서의 나’와 ‘개인인 나’를 분리한다.

콜센터 상담원의 가장 큰 장점은 퇴근 후 업무를 볼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장기 휴가를 떠나거나 갑자기 병가를 내도 인수인계가 필요하지 않으므로, 회사 연락을 받을 일도 없다. 그러니 아무리 힘든 고객과 통화했다 해도, 근무 시간이 끝났다면 얼른 상담원 스위치를 끄자.


콜센터 외에 다른 꿈이 있다면 이상적인 삶에 한 발자국 다가갈 수 있도록 자기 계발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생산적인 일을 할 기력이 없다면, 가끔은 책이나 넷플릭스의 세계로 도피해도 좋다.


상담원으로서의 자아와 개인으로서의 자아를 분리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고객의 컴플레인이 향하는 대상은 ‘회사를 대표하는 나’이지 ‘있는 그대로의 나’가 아니다. 다시 상담원의 자아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내 삶에 오롯이 집중하면 된다.


4. 규칙적이고 건강한 생활 습관을 기른다.

내가 일한 콜센터는 24시간 운영되지 않았기에 밤샘근무는 없었지만, 오전 시프트와 오후 시프트가 주기적으로 바뀌었다. 근무 시간이 달라져도, 가능한 비슷한 시간에 잠들고 일어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아침에는 기도나 명상으로 마음을 가다듬곤 했다.

원래 영양제를 챙겨 먹는 편이 아니지만, 재택근무로 인해 햇빛을 볼 일이 줄어 비타민D를 구입했다. 운동이라면 질색이지만, 여유가 있을 때마다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고, 집에서는 간단한 스트레칭을 반복했다. 야식과 술도 줄였다. 고리타분하게 들리지만, 스트레스 관리에는 건강한 신체가 필수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는 데도 버티지 못하겠다면, 이직이 답이다. 내 한계는 ‘이렇게 사느니 죽는 편이 낫겠다’라는 생각이 진심으로 드는 순간이었다. 누가 뭐래도 내가 최선을 다했다면 후회와 미련은 남지 않는다. 그리고 고군분투하는 동안 얻은 깨달음은 내 재산이 되어 다음 여정을 도와줄 것이다.


일본 콜센터 표현:

かしこまりました。
(카시코마리마시타)

알겠습니다.


대표 이미지: Photo by Alisa Anton on Unsplash

 Ant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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