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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은 Jun 20. 2021

콜센터에서 배운 삶의 태도

여행사 콜센터에서 상담원으로 재직하는 동안 하루에 적게는 20~30, 많게는 70~80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중에는 애플리케이션이나 포인트 사용에 해박한 젊은 층도, 전화 예약을 선호하는 노년층도 있었고, 1박에 몇만  하지 않는 저렴한 숙소를 예약하는 사람에서부터 백만 원이 넘는 특급 호텔에 며칠씩 머무는 사람까지 경제적 수준도 다양했다. 고객이 사는 지역에 따라 제각각인 말투를 듣는 일도 흥미로웠다.


그러나, 상담원에게 가장 중요한 점은 고객의 연령도, 재산도, 출신지도 아닌 그들의 태도다. 같은 문의에 같은 답변을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여행사 콜센터는 보통 원활한 상담을 위해 전화 연결 시 자동 음성 안내를 통해 예약 번호를 미리 수집한다. 스마트폰 키패드에서 입력하다 보니, 실수로 번호를 잘못 입력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 사실은 고객의 성함이나 연락처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금세 드러나므로, 그럴 때마다 상담원은 이렇게 물어본다.


고객님, 실례지만 입력해주신 예약번호와 고객님 정보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예약 번호 0000가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주시겠어요?


대부분의 사람은 '아 그래요? 그럼 다시 불러드릴게요'라고 무난히 번호를 정정한다. '아이고,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해요'라고 상냥한 한 마디를 덧붙이는 사람도 간혹 있다. 그리고 열에 한두 명 정도는 '난 제대로 눌렀는데 귀찮게 왜 또 누르라는 거야'라고 화를 낸다. 이럴 때는 속으로 '네가 잘못 입력해놓고 왜 나한테 큰소리세요'라는 생각이 들지만, 감정을 배제한 채 똑같은 안내를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


환불 불가로 예약한 상품을 고객의 단순 변심으로 취소할 때도 그렇다. 호텔을 비롯한 다른 업체와 이야기가 잘 진행되어 위약금을 면제받은 경우, 보통은 형식적으로라도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여기에 '덕분에 진짜 살았어요. 다음에도 꼭 이용할게요'와 같은 넘치는 감사의 말로 상담원을 감동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당연히 해줘야 할 일을 질질 끈다'라는 식으로 통화 내내 구시렁거리는 일부 고객도 존재한다.  


상담원도 사람인지라, 고객이 친절하면 문제가 더 원활하게 문제가 해결되도록 발 벗고 나서고 싶어 진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면, 여유가 있을 때 개인적으로 팔로업을 해서라도 만족스러운  답변을 드리도록 노력한다. 반면, 어떻게 해도 불평만 돌아오는 고객에게는 매뉴얼대로의 응대만 하고 가능한 한 빨리 전화를 끊게 된다. 다시 엮일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물론 나와 섞은  마디 말로 그들의 삶이나 인격을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똑같은 대응에도 반응이 천양지차다 보니, 어쩔  없이 비교는 된다.  이런 생각도 든다. 당연한 일에도 기쁨과 고마움을 발견하는 사람은 삶이 얼마나 아름다울. 얼굴도 모르는 상담원도 그들에게 따뜻해질 수밖에 없는데, 가까운 사람들로부터는   신뢰와 보답을 받으며 살아가지 않을까.


반면,   아닌 일에도 불만을 품고, 짜증 섞인 말로 받아치는 사람은 얼마나 인생이 고달플까 싶다. 콜센터 일을 하다 보면, 작은 꼬투리라도 잡아 끈질기게 컴플레인을 거는 쪽이 하나라도  가져가는 상황을 자주 목격한다. 하지만,  푼의 보상이 정말 그들의 궁핍한 마음을 채워줄지 의문이다. 어쩌면 그런 이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에게 불친절하고,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은 모조리 불합리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권선징악은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태도에 따라 다르게 비치는 세상이  대신 선물과 복수를 해주고 있는 셈이니. 동시에 스스로에게도 이렇게 질문하게 된다. 과연 나는   어느 세상에서 살고 싶은지.


일본어 콜센터 표현:

深くお詫び申し上げます。
(후카쿠 오와비 모우시아게마스)

깊이 사과드립니다.


대표 이미지: Photo by Kelly Sikkem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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