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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은 May 11. 2024

다카마쓰 혼밥 일기, 우동

추천곡: 김동률 <출발>

<다카마쓰를 만나러 갑니다> 개정판에 실을 추가 원고를 쓰기 위해 다카마쓰로 떠나는 날, 도쿄에는 부슬비가 내렸습니다. 2018년 7월, 처음 다카마쓰 공항에 내린 날도 비슷했어요. 태풍이 지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젖은 거리를 부서진 캐리어를 끌고 걸었던 기억이 나네요. 다행히 2024년 5월에는, 도쿄의 하늘만 울먹거릴 뿐, 다카마쓰의 하늘은 슬며시 웃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밀려온 번역과 원고 탓에 여행의 설렘보다는 부담만 가득하던 제 마음도, 막상 공항에 내리자 봄 필터를 씌운 듯 화사해졌습니다. 피부에 닿는 바람의 온도도 여름보다는 봄에 가까웠어요. 4박 5일 동안 최저 기온 10도, 최고 기온은 20도 남짓. 기내용 캐리어에 넣은 청바지 하나와 반팔 티 두 장, 원피스 두 벌, 재킷 하나를 돌려가며 입다 보면 금방 지나가 버릴 시간이지요.


보잘것없는 나리타 공항 제3터미널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치즈를 채운 쌀 과자 한 봉지, 물 한 병, 카페 라테 한 병으로, 기내에서는 넷플릭스에서 보다 만 드라마와 선물 받은 책으로, 그리고 시내로 들어오는 리무진에서는 보관함의 음악으로, 그저 이동이 목적인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며 목적지에 다가갔습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체크인. 도쿄에도 저만이 방이 있지만, 그보다도 작은 싱글 침대 하나 놓은 호텔 방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지더군요.


와이파이에 연결해 급한 일을 처리하고 힘차게 걸어간 곳은 다카마쓰역. 온종일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터라 허기가 졌고, 뇌는 우동을 먹으라는 명령을 쉼 없이 내보내고 있었어요. 원래 가고 싶었던 우동 보우는 문을 열지 않아, 다카마쓰역 2층에 자리한 기네야에 갔습니다. 5년 전 출간한 책에서 ’우동의 가장 큰 매력은 단순함이다‘라고 주장했는데, 기본 우동도 가격대가 높아 아예 가장 화려한 우동을 주문해 버렸어요. 토핑이 듬뿍 올라간 우동도 사실 좋아해요. 도톰하고 쫄깃한 면발만 보장된다면, 토핑은 기꺼운 덤이죠.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국물 안에서도 탄탄함을 유지하던 면을, 소고기, 유부, 미역, 파, 우메보시, 달걀말이, 시소 덴푸라, 새우 덴푸라 등 다양한 재료에 한 젓가락씩 천천히 음미했습니다. 흡족했어요. 맥주를 마시지 않았는데도요. 사진은 메인에 있으니 생략할게요. 빨리 먹고 싶어서 한 장밖에 못 찍었거든요.


든든하게 먹은 다음엔 소화를 시켜야지요. 자연스럽게 다카마쓰항으로 걸어가, 붉게 빛나는 유리 등대, 세토시루베를 보고 왔답니다. 살짝 비릿한 바다내음, 잔잔한 물결에 비친 노을빛, 조깅하는 개인과 담소를 나누며 걸어가는 무리들, 모든 풍경이 마음에 차 나도 모르게 몇 번이다 ’좋다‘는 탄성을 내뱉었습니다.



걸었으면 또 허전해진 속을 채워야지요. 먹고, 걷고, 먹고, 걷고 하는 자신을 보면 기계와 다름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인간이니 무엇을 먹을지 선택은 할 수 있어요. <다카마쓰를 만나러 갑니다>에서도 소개한 나카조라에 설레는 마음으로 입장했습니다. 계단을 오르면 문도 없이 펼쳐지는 차분하고 아늑한 공간에 곧바로 스며들었어요.



첫날은 위스키에 가져온 책을 읽으며 마무리했습니다. 오늘의 추천곡은 여행을 시작할 때 듣기 좋은 김동률 가수님의 <출발>. 가사가 다 좋지만, 저는 이 부분이 가장 와닿았답니다.


새로운 풍경에 가슴이 뛰고
별것 아닌 일에도
호들갑을 떨면서
나는 걸어가네 휘파람 불며


본격적인 취재는 둘째 날부터 시작했어요. 더 많은 이야기는, 유월 출간될 <다카마쓰를 만나러 갑니다> 개정판에서 확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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