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곡: 찰리빈웍스 <우리 사랑은>
5월 넷째 주 금요일, 몸이 뜨거운 것은 초여름의 햇살 탓인지, 감기 탓인지, 기어이 참지 못하고 들이킨 맥주 탓인지 헷갈려하며, 편지에 쓸 말을 생각해 냅니다. 하고 싶은 말에 비해 할 수 있는 말이 적어 답답함을 느끼다, 자유에 관해 끄적여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나 연고 없는 도시에서 부모형제와 떨어져 지낸 탓에 간섭에 익숙하지 않고, 어딜 가나 내 몸 하나쯤 건사할 방법쯤 있음을 압니다. 노동의 질이랄까, 효율성은 모국에 비해 떨어지더라도요. 자발적 선택이라기보다는 불가피한 상황에 가까웠던 경험을 독립적인 것이었다 포장할 수도 있지만, 실은 자유로운 성향만큼 의존 욕구도 강합니다. 이방인의 삶은 소속감이 적어 홀가분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신분 자체가 핸디캡이라 위축되는 순간도 많잖아요. 여기에 걱정 많은 성격과 관계에 대한 결핍도 있고요. 오래 만난 단 두 명의 이성이 모두 해외 생활 중에 만난, 그곳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도 우연이 아니겠지요.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은, 완전한 남이었던 둘이 끈질기게 노력해서 발전해가지 않으면 언젠가 흩어지기 마련입니다. 특히 의존은 공짜가 아니지요. 단순히 물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무언가에 기대려면 우선 그 대상이 있는 장소에 내가 있어야 해요. 공간의 제약이 생깁니다. 인간관계는 이보다 더 까다롭습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내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일도 흔치 않지만, 타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기란 훨씬 더 어려우니까요. 나아가, 내가 줬다고 생각하는 만큼, 어떤 식으로든 보상받으려는 본능이 치솟기도 해요. 누군가와 함께하며 필연적으로 맞춰가다 보면 ‘나’라는 사람도 조금은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변화된 내가 마음에 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큰일이에요. 결국 의존의 가장 큰 대가는 어느 정도의 나다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반면,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에도 허점은 있습니다. 제 부족한 경험에 비춰보자면, 뿌리가 약하다 못해 아예 지면에서 떨어져 부유하는 느낌이 지속됩니다. 주변에는 언제든지 멀어질 수 있는 관계뿐이고, 내향적인 성격 탓도 있지만, 정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이도 없어요. 어느 날 갑자기 나 하나쯤 사라져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고독함. 살아갈 이유가, 그저 살아 있다는 사실 밖에 없는 공허함. 한 때 엄마라는 역할을 간절히 원했던 이유도, 나의 생존 욕구를 위해 이 험난한 세상에 누군가를 끌어들이고자 한 이기심이 아니었나 싶어요. 내가 예민하고 자기 위주라 엄마로서 신뢰가 가지 않았다는 말이 슬펐던 건, 내심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렇지만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었기에 20대 후반에 안정적인 직장도 그만두고, 일본으로 유학 올 수 있었어요. 지금까지도 잘한 결정이었다 스스로 칭찬하는 부분이거든요. 게다가 지금은, 10대와 20대 때보다는 내면이 단단해졌으니, 예전처럼 허무와 우울에 잠식되지 않고, 나에게 유익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거예요. 당장 경제적인 상황이 조금 나아지면, 내년부터 새로운 공부를 시작할 계획이고요. 그런 결정들이, 제게 살아가는 의미나 까닭이 되어 주기를 바랍니다. 또, 연인이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와 묶여 있지 않다고 해서 외로우라는 법도 없습니다. 제가 도쿄를 쉽게 떠나지 못하는 연유는, 희박해진 도전 정신도 있지만, 가족 같아진 동성 친구들의 존재도 한몫 하거든요.
한편, 자유는 방종으로 치닫기도 쉬운데요. 운동이나 사고 기능을 잃은 채 장수하기보다 건강한 상태에서 돌연사하기를 바라기에, 당장의 즐거움을 중시하기 쉬워요. 이를테면, 목감기에 골골 거리면도 술을 놓지 못해 밤마다 기침에 괴로워하는 이번 주 제 모습처럼요. 오늘은 정말 술을 마시지 않고, 하나 남은 햇반과 냉장고에 잠들어 있던 변변치 않은 재료를 털어 넣어 만든 죽을, 온종일 조금씩 떠먹으려 합니다. 냉동 만두는 밥솥에 넣고, 물과 참기름을 살짝 둘러서 쪘고요, 간장과 식초, 깨와 고춧가루를 적당히 섞은 양념에 찍어 먹었습니다.
재료: 햇반 1, 마른미역 3T, 참기름 1T, 들깻가루 3T, 간장 2T, 까나리액젓 1.5T, 다진 마늘 1T
1. 미역을 잘게 부숴 물에 30분 이상 불린다.
2. 불린 미역의 물기를 제거하고, 참기름을 두른 냄비에 간장과 함께 달달 볶는다.
3. 2에 전자레인지에 돌리지 않은 햇반을 넣고, 주걱으로 으깨가며 미역과 섞는다.
4. 3이 충분히 잠길 정도로 물을 넣고, 한 번 팔팔 끓인 뒤 약불에 저어주며 익힌다.
5. 밥이 퍼지면 들깻가루, 까나리액젓, 다진 마늘로 맛을 낸다.
이번 주에 새롭게 발견한 노래는 찰리빈웍스의 <우리 사랑은>입니다.
만약 우리 사는 동안 아픔이 없다면
단지 짧은 삶이 그리 의미가 있을까
나는 바람도 버티기 힘들곤 하지
그래도 괜찮아질 거야
만약 우리 사는 동안 슬픔이 없다면
스쳐가는 80년이 의미가 있을까
거리를 걷다가 철렁 엎드리곤 해도
그래도 괜찮아질 거야
마음들은 전부 소중했던 추억이니
전부 모아 살아갈래
이 글을 제 주변인이 얼마나 읽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제 방에서 혼자 삽니다. 작은 섬이 되어 때때로 가까이 흘러 들어오는 다른 섬을 끌어안거나, 좋아해 마지 않는 꽃과 파도, 바람에 기꺼이 물들며, 홀로 부유할 각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