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곡: 주주클럽 <나는 나>
환절기입니다. 풀어서 쓰면 ‘계절이 바뀌는 때季節の変わり目.‘ 고작 일주일이었는데 어떤 날은 최고 기온이 30도에 육박해 반팔 티를 입었고, 어떤 날은 20도를 겨우 넘어 다시 재킷을 꺼냈습니다. 날씨는 더웠다 추웠다, 기분은 즐거웠다 슬펐다, 삶은 좋았다 싫었다, 일정은 한가했다 바빴다, 합니다. 그래도 제법 성숙해져서인지 교차하는 양상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남의 일인 양 관조합니다.
아, 바쁨은 관조할 수 없군요. 번역 의뢰가 들어와 직장에 다니며 열흘 동안 3만 5천 자를 번역해야 하거든요. 마감 전에 다카마쓰에도 4박 5일 취재를 가야 하는데, 제법 높은 번역료를 준다니 잠을 줄여서라도(이제 안 잘 수는 없어요) 해 보는 수밖에요. 연재 요일을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슬쩍 미룬 것도 그래서였답니다. 몇 주째 시시콜콜한 근황만 늘어놓고 있지만, 혹시 원래 연재 요일을 기억하고 제 변변치 않은 일기를 기다린 분이 계셨다면, 정말 죄송해요.
이번 주에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 며칠 내내 고민했습니다. 진은영 시인의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라는 시집을 읽고 든 사랑에 관한 단상을 두서없이 늘어놓을까, 최근 인상 깊이 읽은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의 감상문을 써 볼까, 아니면 속 보이기는 하지만, 5년 만에 첫 단행본인 <다카마쓰를 만나러 갑니다> 개정판을 준비하는 과정을 쓸까. 그러다 결국 상담 내용을 정리해 보기로 했습니다. 일종의 보고랄까요.
지난 몇 주 동안에는 상담사와 구두로 문장완성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상담사가 미완성된 문장의 앞부분을 던지면, 내담자가 나머지를 채우는 방식이에요. 자연스럽게 내담자의 평소 생각이나 속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지요. 처음에는 이 검사가 어려웠습니다.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문장이 제가 판단하기에 너무 초라하거나 추악해서, 더 그럴싸한 답을 생각하는 데 시간이 걸렸거든요. 이를테면, ’참된 친구는 ____’이라는 제시 문장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떠오르거나, ‘우리 부모님은 ____’이라는 테스트에 사회적으로 용납하기 힘든 말이 튀어나와 억눌러야 했답니다. 상담사 선생님 앞에서 자기 검열을 한 셈이지요.
상담사님은 그런 말도 할 수 있어야 건강한 것이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익숙해진 건지, 편안해진 건지, 시간이 거듭될수록 대답이 나오는 속도도 빨라졌지요. 이번 주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나‘라고 대답했고(사실 다른 얼굴이 스치긴 했지만), ‘내가 아는 집안’은 ‘모두 저마다의 고충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고리타분한 질문이지만 ‘완전한 남성상’으로는 ‘다정함’을 꼽았고, ‘행운이 나를 외면하면’이라는 제시 문장은 ‘좌절하겠지만, 묵묵히 준비하며 기다린다’고 완성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긍정적이고 단단해진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셔서 기뻤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지밖에 모른다’라는 비난을 자주 들었어요. 그럴지도 모르죠. 그런데, 그러면 어떤가요.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해도, 누군가에게는 나쁜 사람이 된다고 해도, 저는 계속 제 자신을 우선순위에 두겠습니다.
번역 의뢰가 들어오고 나서는 바쁜 탓에 두 끼를 컵라면으로 때웠는데요, 오늘은 <도쿄 혼밥 일기>를 위해 명란아보카도 비빔밥을 만들었습니다. 명란이 짭짜름해서 간장을 추가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이미 잘 알려진 요리라 레시피가 필요 없어 보이지만, 구색을 맞추기 위해 넣어 둘게요.
재료: 밥 한 공기, 아보카도 1/2, 명란 1T, 달걀, 김, 들기름(저는 참기름보다 들기름이 좋아서요.) 1T.
1. 아보카도를 슬라이스 하고, 달걀을 부치고, 김을 얇게 썬다.
2. 밥 위에 1을 토핑 하고, 명란을 올린다.
3. 들기름을 뿌린 뒤 잘 섞어 먹는다.
‘나’라는 키워드에 맞는 노래를 떠올리다 보니, 이 곡이 머릿속을 맴도네요. 주주클럽의 <나는 나>. 사적인 이야기를 브런치라는 공개된 공간에 털어놓는 저에게 어울리는 것 같아요. 물론, 아직 쓰지 못하는 일도 많지만요.
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있어
내 경험에 대해
내가 사랑을 했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
언제까지나.
다음 주는 <다카마쓰를 만나러 갑니다> 개정판 작업을 위해 4박 5일 동안 취재 여행을 떠나요. 조금 더 재미있는 편지를 보내드릴 수 있기를. 메뉴는 이미 우동으로 정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