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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다카마쓰

by 이예은
삶은 기억의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안에는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날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쓰라린 날카로운 상처도, 무색무취의 투명한 일상도 있다. 그중 가장 그리운 추억은 언제나 여행이다.


여름 빛깔로 찬란하게 빛나던 다카마쓰에서의 한 달은 내가 가장 자주 꺼내어 보는 기억의 조각 중 하나다. 처음 만나는 문화와 풍경으로 충만했던 시간이 그리워서이기도 하고, 삼십 일이나 머물면서도 가보지 못한 장소가 아쉬워서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혼자 한 달을 살며 무엇을 얻었냐고 묻는다면, 뻔하지만 ‘힐링’이었다고 답하겠다. 치료보다는 가볍고, 휴식보다는 무거운 그 말, 힐링.


다카마쓰에서의 힐링은 일시적인 만족감이 아니라, 삶의 태도를 교정해주는 꽤 깊이 있는 경험이었다. 우동과 와산본, 호네츠키도리 등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오랫동안 지켜온 맛은 음식뿐 아니라 직업을 대하는 나의 태도까지 다잡게 했다. 단순히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주민들의 일상을 보듬고자 한 베네세 홀딩스의 아트 프로젝트는 또 얼마나 따뜻했는지. 평범한 소도시와 섬마을을 빛내는 다양한 작품은 예술을 보는 순수한 감성을 되찾아 주었으며, 작가의 독특한 시선을 통해 인식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는 기쁨도 알게 했다.


이사무 노구치 정원 미술관 @fromlyen


또 매일 10km 이상 낯선 길을 걸으며 누군가의 딸이나 아내, 직장 동료가 아닌 원래의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일상에서 들키기 싫은 서툴고 불완전한 면도 모든 것이 처음인 여행지에서는 자연스러운 모습일 뿐이다. 길을 잃고 엉뚱한 동네를 헤매거나 화폐가 낯설어 자꾸만 계산을 틀렸던 기억은 오히려 유쾌한 에피소드로 남는다. 자연에 둘러싸인 공원과 절, 신사를 누비며 도시에서 위축됐던 마음이 한 뼘씩 늘어나는 것을 느꼈다. 가가와현에서 누린 자유로운 시간은 지금껏 잘 버티며 살아온 나에게 주는 선물이자 미래를 향한 응원이었다. 그곳에서 스스로 처방한 푸드∙아트∙워킹 테라피는 이처럼 나를 내면으로부터 위로하고, 삶을 이어갈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물론 나의 여행법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것을 마주해도 느끼는 감상은 사람 수만큼 다양한 법이니까. 어디에 가서 ‘좋았다’라는 만족감은 유전이나 환경에 의해 저마다 다르게 조각된 취향과 그날의 날씨, 기분,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태도 등 수많은 요소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평점 사이트에 적힌 별의 개수보다는 여행이 선물하는 우연과 자신의 직감을 믿고 다카마쓰의 새로운 매력을 마음껏 찾아 주었으면 한다.


이 책을 쓰면서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 행복했고, 이제야 다카마쓰를 완전히 떠난 기분이다. 내 여행의 끝이 누군가의 유의미한 시작이 되기를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리쓰린공원 유카타 체험 @fromlyen




※ 세나북스 단행본 『다카마쓰를 만나러 갑니다』의 미리 보기 연재이며, 일부 사진과 원고가 추가되었습니다. 출간된 도서는 총 21편의 에세이와 여행 정보, 이용 팁, 추천 코스 등을 포함합니다. 구입을 원하신다면,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네이버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406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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